[그 노래 그 사연] 문주란 <동숙의 노래>: 한 여인의 비극으로 시작된 노래... 신인 ‘문주란’을 일약 대스타로 만든 노래

양희수 기자

등록 2026-01-06 15:49

17세 나이에 맞지 않는 특유의 저음 허스키 보이스

가난과 사랑, 배신 등 비극이 만든 1960년대 여성의 초상을 노래

당대 최고의 작사가 ‘한산도’와 작곡가 ‘백영호’가 협업

실재 여부를 넘어 오래도록 실화처럼 기억된 노래

 동숙의 노래 앨범

1966년 발표된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 그저 한 여자가 지나간 사랑을 조용히 돌아보는 노래처럼 들린다. 원망도 크지 않고, 울부짖지도 않는다. 다만 이미 늦어버린 마음을 담담히 읊조릴 뿐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노래 바깥에서 전해져 온 한 비극적인 이야기가 늘 함께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1960년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오동숙’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 시절 시골, 농촌 출신의 여성이 서울로 상경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여공, 식모, 버스 안내양 등 소위 ‘삼순이’ 밖에 없었다. 

오동숙이라는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삶은 늘 뒤로 미룬 채 부모와 동생들을 먼저 생각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면서였다. 배움과 미래를 꿈꾸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이자 고시생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선생 역시 호감을 보이며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동숙은 그를 위해 밥을 짓고 살림을 돕고, 장래를 약속하며 마음과 삶을 내어준다. 어느 날 선생이 어머니의 병환을 이유로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동숙은 의심 없이 자신이 모아두었던 돈을 건넨다. 사랑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곧 그녀가 다니던 공장은 폐업하고, 생계는 막막해진다. 결정적으로 동숙은 자신이 사랑했던 선생에게 이미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었던 사랑은 기만이었고, 헌신은 이용당한 것이었다. 여기에 아버지의 수술비 문제까지 겹치며 동숙은 극도의 절망과 분노에 빠진다. 

결국, 그녀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선생을 찾아가 홧김에 칼을 휘두르고 만다.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살인미수로 동숙은 구속되고 이 사건은 당시 신문과 잡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사회적 관심을 끌었고, 가난과 사랑, 배신이 만들어낸 비극으로 회자 되었다. 


 1960~70년대 가발공장에서 근무하는 여공들

 이 기사를 접한 작사가 한산도가 가사를 만들고, 백영호가 작곡하고 문주란이 부른 곡이 바로 <동숙의 노래>이다.

가사는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대신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미움이 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른 뒤에야 눈물이 흐른다고 말한다. 이 여백 덕분에 노래는 영화 속 동숙과, 신문 속 동숙,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함께 담게 된다.


 작사가 한산도(좌), 작곡가 백영호, 문주란

 이 노래로 데뷔한 17세의 문주란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음성으로 동숙의 슬픔을 노래했다. 노래는 크게 사랑받았고, 영화와 노래, 그리고 ‘실화’로 전해진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였다. 

2005년 <MBC 타임머신>, 2008년 <KBS 스펀지>, 2011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동숙의 노래>가 비극적인 실화 모티브라고 소개되었다. 

하지만, 2012년 인천방송 OBS <나는 전설이다>에 출연한 문주란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사진=OBS <나는 전설이다>

한편, 이 노래는 1967년 7월에 개봉된 영화 〈최후전선 180리〉의 주제가로 전격 삽입되는데, 태현실, 남궁원, 이대엽, 김석훈 등이 출연했으며, 특히 영화 속 여주인공 이름이 ‘동숙’이다.

영화의 내용은 동숙과 사귀던 남자는 사소한 오해로 갈등하다 군에 입대한다. 6.25 전쟁 중 적진 깊숙이 침투한 특전대원들은 화약을 폭파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의 작전 임무를 완수하지만 치열한 교전 끝내 전 대원이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내용의 전쟁물로 마지막에 잊지 못할 연인 동숙의 이름을 부르면 전사한다는 줄거리이다.

비록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동숙의 노래>는 인물의 내면과 비극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고, 신인가수 문주란을 하루아침에 대스타로 만들면서 그녀의 대표곡이 되었다.

  <최후전선 180리> 영화 포스터

노래를 부른 문주란의 본명은 ‘문필련’이다. 부산 출신의 허스키 보이스로 15세 때 부산 MBC 노래경연대회에서 6주간 1위를 차지했는데, 그때 부른 노래가 현미의 <보고 싶은 얼굴>이다. 

그 이후 각종 무대에 서다가 시공간(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를 부르면서 화제가 되었고, 15세였던 문주란은 당시 최고의 작곡가 백영호에 픽업되었다.

저음의 허스키 보이스인 그녀를 위해 당시 최고의 콤비였던 한산도가 가사를 붙이고, 백영호가 곡으로 만든 노래가 바로 <동숙의 노래>이다. 

‘문주란’이란 예명은 <보슬비 오는 거리>를 작사한 ‘전우’가 자신의 단골 다방이었던 ‘문주란’에서 마치 문주란처럼 활짝 피라고 지어준 예명이다.

 

<동숙의 노래> 이후 작곡가 박춘석과 함께 <타인들>, <돌지 않는 풍차>, <낙조>, <공항의 이별>, <봄이 오는 고갯길> 등 히트곡을 내놓았다.

1966~1968, 1972~1974 동안 MBC 10대 가수로 선정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1981년에는 일본에도 진출해 활동하기도 했고, 1982년에는 일본 동경 국제가요제에서 최고 가창상을 수상했다.

1983년에 귀국하여 KBS의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배경음악에 수록된 〈누가 이 사람을 (남과 북)〉이 히트했다. 1986년에는 <백치 아다다>로 인기를 얻었으나, 교통사고로 활동이 주춤하다가 1990년에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가 각종 차트에서 오르면서, 많이 알려지게 된다.


 1967년 MBC 10대 가수 선정

 이후 작사가와 작곡가의 증언을 통해 <동숙의 노래>가 특정 실화를 직접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 노래는 단순한 영화 주제가도, 한 사건의 재현도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동숙들의 이름 없는 이야기들이 겹쳐 만들어진 노래다.

실재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삶을 담은 노래다.

 

가수 : 문주란 

작사 : 한산도 

작곡 : 백영호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모친 미움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 때는 늦으리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 건만

그대 따라 못 가는 서러운 이 몸

저주 받은 운명이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음~ 뜨거운 눈물




<저작권자© 트롯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양희수

양희수

기자

여기에 광고하세요!!

트롯뉴스
등록번호서울 아56004
등록일자0025-06-20
발행인박강민 이진호
편집인박강민
연락처02)552-9125
이메일trotnewspool@gmail.com
주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64길 13, 6층 610a
트롯뉴스

트롯뉴스 © 트롯뉴스 All rights reserved.

트롯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