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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_기타지마 사부로] “내 노래는 술자리에서 불리면 충분” 노동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2-19 13:39

인생 곡 ‘마츠리’ 일본 엔카의 상징으로 불리며 국민가수로

서민들에게 위로보다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는 동력 제공

“배고프면 노래가 솔직해진다.” 호소력 강한 창법으로 인기

‘장르 수호자’, ‘서민 대변’, ‘카리스마’ 등 나훈아와 닮은꼴

 □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 ④ ‘마츠리(축제)’의 왕 기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

 

대한민국 유일의 트로트 전문 매체 ‘트롯뉴스(trotnews.co.kr)’가 ‘트로트 세계화 원년’을 맞이한 2026년 신년 특별 기획,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시리즈의 네 번째 장을 연다.

오늘 우리가 만날 주인공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슬픔에 침잠하기보다 어깨를 다독였고, 혼자 울기보다 함께 외치는 법을 가르쳐 준 남자다. 전편의 모리 신이치가 혼자 견디는 남자를 노래했다면 기타지마 사부로는 가족과 공동체를 책임지는 남자를 노래했다.

일본인들에게 ‘노래하는 아버지’이자 ‘서민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거목, 기타지마 사부로의 인생과 그가 일궈낸 국민 서사를 조명한다. 


NHK '가요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기타지마 사부로

일본인의 연말 책임진 ‘거대한 상징’

 

매년 12월 31일 밤, 일본의 모든 가정이 TV 앞에 모여드는 시간. NHK ‘홍백가합전’(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 일본방송협회(NHK)에서 매년 마지막 날 방송하는 남녀 대항전 가요 프로그램이다. 출장 가수는 여성이 ‘홍조’, 남성이 ‘백조’에 속해 대결하며 한국의 가수들도 참여하기도 한다)의 대미를 장식하며 거대한 용(龍)이나 배 모양의 장식 위에서 “마쓰리다, 마쓰리다(축제로구나)!”를 외치던 당당한 풍채의 사나이. 그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었다. 한 해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국가적 ‘의식’ 그 자체였다.

 

신주쿠 코마극장 (2006) 에서의 기타지마 사부로

그는 수십 명의 대형 합창단과 북, 깃발 등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세트에서 전통 남성 엔카의 집단 서사를 구현했지만 정작 그는 “무대가 아무리 크다 해도 결국 노래는 한 사람이 혼자 책임을 지는 것이다.”라며 화려한 무대와는 다른 강한 책임의식을 보여주었다.

미소라 히바리가 ‘천상의 목소리’로 전후의 상처를 치유했다면, 기타지마 사부로는 땅의 목소리로 고도 성장기 일본인들의 등을 밀어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중저음의 울림으로 ‘엔카의 제왕’ 자리를 지켜온 그의 삶 속에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지나온 영광과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바다의 아들’

 

1936년 홋카이도 시리우치초서 태어난 기타지마 사부로(본명 오노 타케오)의 유년 시절은 ‘가난’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거친 파도와 싸우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 소년에게 음악은 화려한 예술이기 전에, 삶을 버텨내기 위한 뜨겁고 간절한 외침이었다.

 

기타지마 사부로/사진=시사통신사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상경한 도쿄.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는 막노동, 공사판 허드렛일과 밤거리에서 식당이나 술집을 돌면서 손님의 요청에 따라 노래를 불러주는 ‘나가시(流し, 유랑가수)’ 생활을 하며 푼돈을 벌면서 가수의 꿈을 이어갔다. 

춥고 배고픈 밑바닥 생활이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서민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 가수’가 되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무대 위의 스타이기 전에, 공사 현장에서 땀 흘리고 선술집에서 눈물 흘리는 노동자들의 동료였다. 그의 노래에서 흙냄새와 바다 냄새가 진동하는 이유는 그가 진짜 ‘서민의 삶’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살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배가 고프면 거짓말 같은 노래는 못한다.”라며 “그래서 배가 고프면 노래가 솔직해진다.”라고 회고했다. 힘들었던 경험이 그의 직선적이고 호소력이 강한 창법의 뿌리가 된 것이다.

 

 

‘눈물의 음악’서 ‘연대의 음악’으로

 

기타지마 사부로 이전의 엔카는 주로 이별의 아픔, 여인의 한, 이루지 못한 사랑 등 ‘비극적 개인사’에 침잠해 있었다. 하지만 기타지마는 달랐다. 그의 목소리는 직선적이었고 가창은 힘이 넘쳤다.

기교를 부려 꼬기보다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통성을 사용해 시원하게 뻗어 나간다. 그의 직선적인 창법은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의 노래 가사에는 고향, 어머니, 형제, 그리고 동료애가 가득했다. 개인의 연애사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풍경’을 노래한 것이다. 또 따라 부르기 쉬운 구조와 반복적인 후렴구는 엔카를 ‘감상하는 음악’에서 ‘함께 부르는 축제’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화 시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외롭게 일하던 수많은 청년에게 강력한 공동체적 위로를 전달했다. 그의 엔카에는 눈물이 없다. 하지만 내일도 일하러 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는 노래를 통해 “너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라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신했다.

  4000회공연 아내 마사코씨와 함께한 기타지마 사부로/사진 =시사통신사

노동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

 

그는 자신이 ‘국민가수’, ‘전설’ 등으로 불리는 것에 늘 거리를 두었다. “내 노래는 술자리에서 술 한잔하다 옆에 있는 형이 불러주는 노래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그의 소탈한 태도 때문인지 그의 노래는 무대 위보다 술자리, 일터, 생활공간에서 자주 불렸다.

기타지마 사부로의 노래는 일본의 노동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의 노래 가사의 주인공은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억울해도 참고 간다.’,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됐는지 누가 잘못했는지가 없다.’ 오직 “그래도 해야 한다.”만 있을 뿐이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힘들지?”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내일도 네가 가야 할 곳이 있다.”라며 그들에게 삶을 지탱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의 해소보다 감정을 잠시 접어두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흔들리면 힘든 하루를 버틴 사람들이 더 흔들린다.”라며 무대에서 장난스러운 표정이나 아첨하는 멘트, 감정 과잉 연기를 철저히 배격했다. 관객들을 ‘위로하기’보다는 버틸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라는 그의 엔카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의 노동자들이 기타지마 사부로를 찾는 이유는 그의 노래가 인생을 바꾸어주지는 않지만, 인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기 때문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정점 ‘마츠리(まつり)’

 

기타지마 사부로의 인생 곡이자 일본 엔카의 상징과도 같은 곡, 바로 1984년 발표된 ‘마츠리(축제)’이다. 이 곡은 엔카라는 장르를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국가적 찬가’로 불린다.

 

마츠리(まつり)

 

남자는 축제를 그래,

짊어지고 살아왔네

산신령님 해신님

올해도 정말로 감사해요

하얀 샅바를 동여맨

벌거벗은 젊은이들에게 눈이 흩날리네

축제다 축제다 축제다 풍년 축제

흙냄새가 스며든

아들의 그 손이 보물일세~


 

이 노래는 단순히 신나는 축제 음악이 아니었다. 

농부의 땀방울, 어부의 그물질, 부모님에 대한 공경, 그리고 이웃과의 화합이라는 일본적 가치를 집대성한 서사시였다. 

기타지마는 이 곡을 부를 때 거대한 용 장식이나 배 위에 올라타 사자후를 내지르듯 노래했다. 

그 압도적인 에너지는 개인의 슬픔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공동체가 하나 되어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박동을 만들어냈다. ‘마츠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임을 실감한다.

 

'마츠리' 수록앨범

기타지마 사부로 그리고 나훈아

 

한국의 음악 팬들이 기타지마 사부로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나훈아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은 각 나라의 트로트와 엔카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제왕’들로,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먼저 압도적 카리스마다. 무대를 장악하는 눈빛과 풍채, 그리고 관객을 휘어잡는 장악력이 완벽히 닮아있다.

두 번째는 서민을 대변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화려한 도심의 감성보다는 고향의 향수, 부모님에 대한 효, 그리고 남성적인 의리를 노래하며 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세 번째는 장르의 수호자로 트로트와 엔카가 저급한 유행가로 치부될 때, 당당히 그 가치를 증명하며 국민적 예술로 끌어올린 주역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나훈아가 ‘민족적 자존심’과 ‘영웅적 개인’의 서사에 집중한다면, 기타지마 사부로는 ‘공동체의 평화’와 ‘서민의 유대’라는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거장 모두 노래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한 나라의 ‘정서적 기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K-트로트, ‘공동체의 서사’에 길을 묻다

 

기타지마 사부로는 2013년, 50회 출연을 마지막으로 ‘홍백가합전’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일본의 마츠리 현장에서, 그리고 고단한 하루를 마친 서민들의 선술집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현재 K-트로트는 눈부신 팬덤 문화를 기반으로 세계화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기타지마 사부로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명확하다. 

오래 살아남는 음악은 개인의 기교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축제’와 ‘연대’의 서사를 트로트에 담아낼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제2, 제3의 기타지마 사부로를 전 세계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함께 힘내어 살아가자.”라는 그의 우직한 목소리는, 2026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주고 있다.


 스페셜 콘서트 '영화・노래의 제전'

➭다음 편 예고: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제5편 – 야시로 아키(八代亜紀) “비 내리는 밤, 당신의 마음을 적시는 블루스” — 트럭 운전사들의 연인이자 엔카의 여신, 그녀가 노래한 ‘비의 서사’를 만나봅니다.

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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