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동쪽 궁궐이자 보조 주거 공간
사도세자와 일제강점기의 슬픈 이야기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창경궁 정문 '홍화문'
‘경사스러운 일이 많은 궁’이라는 뜻의 창경궁은 1483년(성종 14년)에 세 분의 대비(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이란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나 태종의 거처를 위해 마련한 궁이다.
창경궁 내부
‘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조선시대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로, 왕이 ‘정사’를 돌보기 위한 목적보다는,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 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 이유로 정전인 ‘명정전(국보)’ 역시, 다른 궁궐의 ‘정전’처럼 2층으로 구성되지 않고, 단층으로 만들어졌고, 남쪽의 ‘종묘’를 바라보는 것이 어색해, 명정전이 동쪽을 향하도록 설계된 점도 다른 궁궐과 다른점이다.
단층으로 된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
창경궁은 왕이 정치 활동을 하는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으로 나뉜다.
외전은 정전인 명정전(신하들의 하례나 즉위식), 문정전(왕의 집무실), 숭문당(왕의 공부방)이고, 외전에서 궁의 안쪽인 내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금남(남자 출입금지)의 문이 '빈양문'이다.
왕비의 거처인 '통명전'
내전에는 왕실의 여인들이 거처했던 경춘전, 왕비의 거처인 통명전 등이 있다.
성종 때 창건된 창경궁은 임진왜란(1592)으로 소실되었고 1616년(광해군 8년)에 재건되었다. 그러다 1624년(인조 2년)에 ‘이괄의 난’과 1830년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은 소실되었다.
내전과 외전의 경계 '빈양문'
다행히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특히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 왕궁의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전 내부
# 슬픈 이야기 1
창경궁은 1701년 조선의 17대 왕인 숙종은 희빈 장씨(장옥정)에게 사약을 내린 곳이다.
MBC 드라마 <인현왕후>, <동이>, KBS 사극 <장희빈>으로 유명하다.
KBS 사극 <장희빈>에서 사약을 받은 장희빈. 사진 출처 = KBS
그리고 1762년 여름, 당시 왕이였던 영조는 세자(사도 세자)를 평민으로 강등하고 뒤주에 가두고 문정전 앞뜰에 방치한다. 결국 8일 만에 숨을 거두는데 세자의 나이 28세다.
문정전 / 사진 출처 = 궁능유적본부DB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나왔는데, 특히 2015년 영화 ‘사도’가 유명하다. 해외에서는 ‘The Throne’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사도(思悼)’는 “생각하니 슬프다”는 뜻으로 세자가 죽은 뒤 아버지이자 왕이였던 영조가 후회하며 내린 시호(諡號, posthumous name)이다.
‘시호’란 유교 문화권에서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에 따라 임금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죄인을 처단하기 위한 집행 방법으로는 목을 매서 죽게 하는 ‘교형’, 목을 베는 ‘참형’, 수레에 팔다리와 목을 매달아 찢어 죽이는 능지처참이 있다.
이런 형벌들은 신체를 훼손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사약은 신체의 훼손 없이 명예롭게 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정부 고위관료나 왕실 가족들에게만 사약이 내려졌는데 이렇듯, 사약은 ‘먹어서 죽는 약(死藥)’이 아니라 ‘왕이 내려 주는 약(賜藥)’이라는 뜻이다.
# 슬픈 이야기 2
현재 창경궁은 10채의 전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1908년에 일본이 당시 왕(순조)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위락 시설을 지으면서 60여 채 전각이 뜯겨 나가고 동·식물원이 들어섰다.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조정(명정전) 마당의 박석(얇은 돌)까지 다 뜯겨지고 꽃밭(벚꽃)이 들어섰다.
그리고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궁’을 ‘원’으로 격하시켰다.
1971년 창경원
시민들을 위한 유원지 개발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조선 왕실의 위상을 우습게 만들려는 일본의 민족말살 정책의 하나였다.
창경원 벚꽃축제 홍화문 입구
일본기업과 재일교포의 기부를 받아서 처음에는 300여 그루의 벚나무로 시작해서 1933년에는 2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벚꽃을 식민지에 심은 이유는 일본 제국의 땅임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동물원이였던 창경원 / 사진 출처 = 중앙일보
해방 후에도 창경원은 한동안 벚꽃 명소로 인기를 끌었지만, 1984년 문화재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창경원’은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궁궐 경내에 있던 동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하고, 일제가 식재한 벚나무 상당수가 서울대공원과 여의도 윤중로로 이식되었고, 이는 오늘날 여의도 벚꽃 축제의 기원이 되었다.
춘당지와 수정궁에서 유람을 즐기는 시민들 / 사진 출처 = 김동준, 전 서울신문
1909년에 지어진 대온실은 서양식 건축 양식으로 설계된 한국 최초의 온실로 향나무, 팔손이나무 등 천연기념물 후계목과 식충식물류 등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볼 수 있다.
국내 최초 서양식 온실 '대온실'
창경궁 후원에 위치한 ‘춘당지’는 근처에 있는 창덕궁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냇물이 모여 만들어진 연못이다.
창경궁의 연못 '춘당지'
창경원 시절 밤에 벚꽃놀이할 때, 이곳에서 미팅하려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그들 사이에 은어로 ‘나체팅’이라고 했다. ‘나이트(night) 체리 블러섬(Cherry blossom) 미팅(meeting)’의 줄임말로 ‘밤 벚꽃 미팅’이란 뜻이다.
밤벚꽃놀이(나체팅) 관련 기사
창덕궁과 창경궁은 연결되어 있어 연계 관람권을 구매하면 창덕궁과 창경궁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 슬픈 이야기 3
2006년 창경궁에 불을 질렀던 방화범이 2008년 숭례문(남대문)에 또 방화를 저질러 대한민국을 울분과 충격으로 만들었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 사진 출처 = English Wikipedia
♠ 창경궁
운영 시간 09:00~21:00(입장 마감 20:00) / 월요일 휴궁
요금 1000원(한복 착용자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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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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