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에 의해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1차 변경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으로 공식 사용
임시정부에서 사용한 태극기
역대 중국 황제(천자)가 다스리던 중국 왕조의 국호는 ‘진’, ‘한(漢)’, ‘송’, ‘당’, ‘원’, ‘명’, ‘청’ 등 한 글자였다.
공식적으로는 앞에 대(大)를 붙이고 뒤에는 제국이라고 붙이며 ‘대명제국’처럼 국호를 사용했다.
그리고 중국 이외의 나라들, 중국 입장에서는 오랑캐 국가들인 조선, 일본, 거란, 몽고(몽골), 여진, 돌궐(지금의 튀르키에), 흉노 등에게 두 글자를 허용했다.
1897년 10월 환구단에서 고종 황제는 조선이 황제의 국가임을 선포하고 국호도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조선’보다는 한 글자의 국호가 필요했고 우리가 원래 삼한(三韓, 마한, 변한, 진한)으로 시작한 나라라는 점에서 ‘한(韓)’을 사용해 ‘대한제국(大韓帝國)’이 되었다.
당시 '삼한'은 고조선의 전통을 이은 국가로 비록 세계의 변방에 위치해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던 중국과 대등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조선'은 고조선의 정통을 이어 조선이라는 국호를 가지게 되었다.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일 당시 거리풍경(1897년 10월)
그렇다면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알아보려면 먼저 ‘신규식(1879~1922)’이라는 독립운동가를 알아야 한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늑약(늑약은 억지로 맺은 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1910년 8월 29일(경술년)에는 국권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당시 대한제국 소속의 군인이었던 신규식 선생은 경술국치에 분개하여 음독자살을 시도하였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졌지만, 오른쪽 눈의 시신경 장애가 생기면서 애꾸눈이 되었다.
당시 27세였던 청년 신규식은 이때부터 흘겨볼 예(睨) 자, 볼 관(觀) 자, ‘예관(睨觀)’으로 자호까지 바꾸며, “애꾸, 그렇다. 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 어찌 나 한 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라고 하셨다.
예관 신규식 선생
신규식 선생은 1907년에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1911년 만주를 거쳐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중국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우려는 이른바 혁명군을 만나게 되는데 ‘쑨원’ 등이 건설하려는 '중화민국'은 더 이상 황제가 중심이 아닌 백성이 중심이 되는 ‘민국’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2000여 년 동안 이어져 왔던 왕조 국가인 중국도 이제 황제가 아닌 백성이 중심이 되는 ‘민국’을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도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여러 독립운동을 추진하게 된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단재 신채호’ 선생은 구심점이 되는 정부가 없어서 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판단하에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를 만들고 국호를 고민하게 된다.
(좌)단재 신채호 선생, (중앙)우창 신석우 선생, (우)예관 신규식 선생 / 사진 = 예관신규식유족회
이때 신규식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신석우(1898~1953) 선생’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신석우 선생은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를 졸업하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여운형과 함께 고려 교민 친목회를 조직하고 유인 신문(油印新聞)인 ‘아등(我等)의 소식’을 발간하는 한편,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 총장을 엮임했다.
1921년 상해임시정부 신년하례회(앞에서 2번째 줄, 왼쪽에서 4번째가 신규식 선생
신석우 선생의 제안에 여운형 선생이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라고 반대하고 조선공화국을 주장했지만,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라고 설명해 모두 동의했다.
당시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이동녕 선생이 1919년 4월 13일 상해에서 “지금부터 이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이다”라고 정식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이때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1899년 헨리 아펜젤러가 주필이 됨으로써 기존의 논조와는 바뀐 독립신문, 1907년 대한매일신보, 1909년 대동공보 등의 신문과, 여러 단체의 기념사 등에서 ‘황제 만세, 대한민국 만세’라 외치는 등 대한제국 시절부터 이미 대한민국이 쓰이고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호는 해방된 나라의 제헌 의회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못을 박음으로써 명실상부한 독립국가의 국호가 되었다.
임시 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 11일과 함께 이날은 ‘대한민국’ 국호가 탄생한 날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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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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