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기념 가수 윤수일 인터뷰
“정통만 고집하는 고루한 트로트로는 한계…. 끝없는 혁신과 노력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해야!”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가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자 윤수일의 ‘아파트’가 재조명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40년 만에 ‘아파트’가 다시 소환되고, 최근 신곡까지 발표하면서 역주행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계 혁신의 아이콘 가수 윤수일 씨를 만났다. 〔편집자 주〕
윤수일의 ‘아파트’는 노래방에서, 회식 자리에서 그리고 프로야구장에서의 ‘떼창 응원가’로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은 목청 높여 부르거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수 윤수일은 몰라도 노래 ‘아파트’를 모르는 사람은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로제의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이미 국민가요 반열에 있는 윤수일의 ‘아파트’는 몇 년 전 인기 있던 모 방송의 음악프로그램인 ‘슈가맨’에 나왔다면 최단 시간 ‘100불’ 달성 기록을 거뜬히 경신했을 것이다.
‘아파트’는 ‘트로트형 대중가요’의 교과서
록과 발라드, 라틴 리듬을 넘나드는 독창적 음악 세계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깊은 자취를 남긴 가수 윤수일.
1977년 데뷔 후 내놓는 곡마다 연속 히트를 하면서 정통 트로트의 서정성과 대중가요의 세련된 리듬을 결합해 ‘장르 혼합형 트로트’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파트’에 이어 ‘황홀한 고백’, ‘황혼의 엘레지’ 등 당시 발표한 인기곡들은 세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트로트 무대의 단골 레퍼토리다.
특히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간결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가 어우러진 ‘아파트’는 ‘트로트형 대중가요’의 상징이자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윤수일의 노래는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전통 팬과 젊은 세대를 동시에 사로잡는 트로트의 대중적 확장 가능성을 증명한 아이콘이다.
KBO 최초의 전구단 응원곡 '아파트' 사진 출처=옛송TV
윤수일의 노래는 정통 트로트맨들 입장에서는 다소 이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트로트 특유의 꺾기와 반복되는 뽕짝 리듬이 보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노래 풍들이 콜라보 되어 부르는 새로운 유형의 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은 누구도 윤수일의 노래가 트로트가 아니라거나 서양음악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그의 노래는 언제나 신박하며 지루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세련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혼혈’ 이유로 군대도 못 가고 취업도 못 해
주한미군 공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윤수일(1955)이 태어나기도 전에 비행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 아버지 덕에 서구적 외모를 가진데 다가 혼혈인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였던 당시엔 군대도 가지 못했고 취업도 어렵다고 판단 운동선수나 하려고 고교 야구부에 입단했지만 1년 만에 야구단이 해체되는 바람에 운동선수 꿈도 접어야 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실망하던 차에 선생님의 권유로 음악을 하게 되었죠”. 윤수일은 도망치듯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수일은 고등학교 때 ‘엔젤스’라는 밴드를 결성,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977년엔 밴드 ‘윤수일과 솜사탕’을 결성, 트롯풍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발표,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MBC, TBC 등 유명방송사에서 잇따라 가수상을 받는 등 인기가수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 여파로 각종 방송 예능프로그램에까지 출연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가수 윤수일’이라는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주일과 만남, 그리고 에피소드
1970년대 후반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큰 인기로 스타였던 윤수일과 같은 소속사의 인기가수 하춘화 씨가 공연할 때면 언제나 이주일이 전속으로 사회를 보았다.
“당시 이주일은 밤무대 등에서는 꽤 인기가 있어 주최 측에서 MC로 스카우트 한 거죠….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여전히 무명이어서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그런 이주일이 안타까워서 틈만 나면 방송 PD 등에게 이주일 씨를 한번 써보라고 부탁하고 다녔어요”.
윤수일의 부탁이 통했던 건지 우여곡절 끝에 이주일 씨는 TV 코미디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고, 어느 날 친분이 있던 윤수일이 이주일과 함께 코미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윤수일은 “그 프로그램에서 나는 이국적 외모 덕에 타잔 역할을 맡아 타잔 흉내를 내면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신(scene)이었는데 세트 옆에 서 있던 이주일이 제 다리에 걸려 물웅덩이로 고꾸라지는 사고(?)가 났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처음엔 크게 다친 줄 알고 우왕좌왕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고 오히려 고꾸라지는 그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 되면서 이주일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운명의 노래 ‘아파트’의 탄생
드디어 1982년 윤수일을 윤수일로 만든 ‘운명의 곡’이 탄생하게 된다.
당시 국내 첫 아파트인 남산 시범아파트에 살았던 윤수일은 문득 아파트를 스토리텔링 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친한 친구가 실연을 당했다는 슬픈 러브스토리를 들었어요…. 그 친구에게 오랫동안 사귀던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사전 예고도 없이 이민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고 여자친구가 살던 텅 빈 아파트만 바라보며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윤수일은 그런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상처를 받을 것을 걱정하여 말도 꺼내지 못하고 이민을 떠나버린 여자친구,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리워하는 친구의 애타는 마음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아파트’는 발표되자마자 공전의 히트하면서 단숨에 윤수일이라는 가수를 ‘초특급 스타’로 만들어버렸다.
“그 노래가 그렇게 제 인생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히트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시대상과 노래의 감성이 팬들에게 와 닿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파트’는 윤수일의 데뷔곡인 정통 트롯풍의 ‘사랑만은 않겠어요’와는 다르게 ‘락 트로트’라는 새로운 발상으로 만든 곡으로 당시로써는 파격적 시도였다.
“‘아파트’는 곡은 강한 비트의 신나는 ‘락(Rock)’이지만 슬픔과 애타는 사랑, 그리움 등 정통 트롯풍의 가사를 얹었어요…. 어쩌면 ‘언 밸런스’한 곡인 셈이죠”. 윤수일은 “음악적 발상의 전환이 오히려 히트곡을 만든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라고 밝혔다.
미스코리아대회 덕분에 탄생한 ‘아름다워’
1980년대에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큰 인기를 누리던 시기이다. 1957년에 시작되었던 미인대회인 미스코리아선발대회는 매회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단숨에 안방극장을 접수했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 덕분에 큰 인기를 누리던 노래가 바로 윤수일의 ‘아름다워’이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를 보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떠올리면서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만들었어요…. 노래가 발표되자 ‘아름다워’는 자연스럽게 미스코리아대회 타이틀곡처럼 되었고, 이를 계기로 사실상 대회 전속 가수가 되어 출연하게 되었죠”. 윤수일은 즐거웠던 무대를 회상했다.
“당시 미스코리아에 출전하는 여성들은 다들 키가 커서 함께 무대에 서면 웬만한 남자가수들이라도 왜소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177cm가 넘는 큰 키 덕에 제가 단골 출연을 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를 가졌던 윤수일이 미인선발 행사에 적격이었다.
“또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참가자들에게 꽃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내가 그때 오현경과 고현정에게 꽃을 줬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수상, 지금 최고의 스타가 되었어요”. 실제 1989년 미스코리아 진(眞)이 오현경, 1988년 대회 선(善)이 고현정이었다.
어린 시절 외로움을 담아낸 ‘환상의 섬’
울산 장생포 출신의 윤수일은 다문화 가족이었던 탓에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홀대받기 일쑤였다. 윤수일은 우울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힘들 때마다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먼바다를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달래곤 했다.
“고향 장생포 앞에 있는 죽도는 대나무 진달래 동백꽃 등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야말로 환상의 섬이었어요”. 윤수일은 “어린 시절 그 아름다운 섬을 바라보면서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했어요. 나의 음악적 소양과 감성도 어쩌면 그때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키웠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어린 시절 멀리 바라보이던 섬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을 모티브로 표현한 것이 ‘환상의 섬’이라는 노래다.
“내 고향 바닷가 외딴섬 하나~ 뽀얀 물안개 투명한 바닷가 속~바위에 앉아서 기타를 퉁기며 인어 같은 소가가 음 내 곁에 다가왔지~ 환상의 섬 환상의 섬 나는 너를 잊지 못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그 섬엔~ 문명이 할퀴고 간 초라한 그 모습 ~모고픈 소녀는 어디론가 떠나고 외로운 갈매기만 음~ 슬피 울고 있네~~”
죽도에 있는 윤수일 동상 / 사진 출처 : 국토디자인
윤수일은 “가사에서처럼 어릴 적 동경하던 환상의 섬이었던 ‘죽도’가 방치되어 찢겨 지고 할퀴어져 아름답던 모습을 잃어간 것을 보고 너무도 안타깝게 생각되어 노래로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노래의 배경이 된 울산 장생포의 섬 죽도는 울산항해상교통관제센터가 있었지만, 이 센터가 이전하게 되자 섬이 폐쇄되는 바람에 10여 년간 방치되어 수풀만 우거져 있어 폐허처럼 변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섬에 윤수일 동상과 환상의 섬 노래비도 만들어졌고 죽도를 다시 살리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울산시는 올해 말까지 전망대 카페 산책로 등을 조성 ‘죽도’를 관광지로 개발하기로 했다. 윤수일은 옛 추억의 섬이 아름답던 모습을 되찾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윤수일은 이후 ‘황홀한 고백’ 등 발표하는 곡마다 연이어 히트,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으며 국민들 속에 가수 윤수일을 각인시켰다.
특히 황홀한 고백은 록 밴드의 리듬감과 한국적 멜로디가 결합된 대표곡으로 윤수일 음악 인생에서 “감성과 대중성을 아우른 결정적 히트곡”으로 평가되며 그를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싱어송라이터로 각인시키며 세대를 초월한 가수로 자리 잡게 만든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11년 만의 정규앨범 ‘2025 우리들의 이야기’
사진 출처 : KBS '불후의 명곡'
윤수일은 70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기획사 누리마루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면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고 지금도 녹슬지 않은 목소리로 관객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함께 한다.
윤수일은 올 3월에 11년 만에 정규앨범 '2025 우리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꿈인지 생신지' 등 내가 작사, 작곡한 10곡이 수록되어 있어요”. 윤수일은 “이번 앨범에는 윤수일의 시그니처인 록-트롯풍에 클래식을 접목한 고급스러운 편곡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누리마루 엔터테인먼트
“이번에 발표한 신곡 ‘서울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서울 등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노래예요. 이번 곡을 들어보면 전혀 정통 트로트가 아닌 새로운 유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블루스 트롯’ 이죠”. 윤수일은 “이제 제 노래는 ‘블루스 트롯’이라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
윤수일이 말하는 ‘블루스 트롯’은 음악적 장르에는 없지만, 블루스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애잔한 형식과 감성에 트로트의 창법과 대중성을 녹여낸 윤수일 음악의 정체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70~80년대 록과 블루스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미친 영향과 한국 고유정서인 트로트와의 결합하려는 윤수일만의 독창적 시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트로트 가수로 불리고 싶다
누리마루 엔터테인먼트
“윤수일이 ‘락 가수’인지 ‘트로트 가수’ 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트로트 가수입니다…. 트로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콜라보 음악을 실험했지만, 여전히 내 음악의 고향은 트로트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윤수일은 1초도 망설임 없이 본인을 ‘트로트 가수’로 칭했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락 트롯’, ‘시티뮤직’ 등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트로트를 기반으로 ‘락’, ‘국악’, ‘재즈’는 물론 ‘클래식’까지 결합하면서 트로트를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윤수일은 인터뷰 내내 최근 트로트 인기를 계기로 트로트가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제 젊은 사람들까지 팬덤이 확대되고 있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트로트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윤수일은 “과거처럼 트로트가 엔카의 아류나 뽕짝이라고 비아냥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수일은 “트로트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K-트롯으로 자리 잡으려면 음악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끝없는 노력과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단순한 멜로디와 촌스러운 가사 등을 탈피하고 연구와 실험을 통해 다양성과 고급성을 가미하여 진정한 국민음악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트로트 인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트로트문화원’ 꼭 필요한 일…. 적극 참여할 것”
“트로트에 대한 문화관을 만들어서 역사를 정리하고 후배들에게 귀중한 한국 대중문화 유산을 알리고 전수하는 작업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나도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돕겠습니다”.
윤수일은 ‘트롯뉴스’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사단법인 트로트문화원’과 ‘트로트문화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면서 언제든 필요하면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윤수일 씨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소견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젊은 가수들보다도 더 절실하게 우리 대중음악의 미래를 걱정하고 후진들을 위해 더 좋은 음악을 전수하고 발전하는데 기여하겠다”는 의지와 열정과 애정이 가득했다.
윤수일이 왜 한국 대중음악의 대부로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윤수일의 트로트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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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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