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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동네, ‘보성 벌교’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01-23 15:06

벌교의 랜드마크 ‘보성여관’에서 하룻밤

작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기행 코스’ 조성

국내 꼬막 70%가 생산되는 겨울철 별미 ‘벌교 꼬막’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여자만 벌교 갯벌

 벌교의 랜드마크 '보성여관' 앞에서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임 대장님. 그런데, 토벌대는 어디에 주둔하고 있습니까?」

「예에, 저어……우선 남도여관에……」 

「뭐요, 여관? 당장 짐을 꾸려 남초등학교 운동장에 집합시키시오!」

태백산맥 제1부 한의 모닥불. 3권 84p

 

그가 벌교에 열흘 정도 머무는 동안 벌교의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성의 지주들까지 남도여관의 뒷문을 드나들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태백산맥 제2부 민중의 불꽃. 4권 43p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1980년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시대와 이념의 격랑을 정면으로 응시한 문제작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과 휴전에 이르는 격동의 시간을 전라남도 벌교를 중심 무대로 펼쳐 보이며, 개인의 삶과 역사가 어떻게 맞물려 흘러 가는지를 치열하게 그려냈다. 

출간 이후 860만 부가 넘는 판매 기록을 세웠고, 영어·러시아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 독자들과도 만났다. 영화와 오페라, 뮤지컬, 만화로 재탄생 했으며, 수많은 문학적 논쟁 속에서도 그 성취 만큼은 의심받지 않았다.


 태백산맥 초판본 / 태백산맥 문학관 보관


한때 전남 동부권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벌교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차 잊혀가는 지방 소도시가 되었지만, 『태백산맥』을 통해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순천만과 여자만을 끼고 고흥과 순천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였던 벌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여수를 통해 들어와 조선의 쌀과 곡물을 수탈해 가던 식민지 포구였다. 

그 역사적 흔적은 지금도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벌교읍에는 소설의 무대를 따라 걷는 ‘태백산맥 문학기행 코스’가 조성돼 있다. 

보성여관을 중심으로 금융조합, 홍교, 김범우의 집, 소화다리, 중도방죽, 벌교역 등이 이어진다. 이 길은 단순한 관광 코스가 아니라,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역사가 겹쳐지는 장소들이다.


 


벌교의 랜드마크인 ‘보성여관’은 소설 속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이다. 

1935년 한국인 강활암이 지은 이 여관은 당시 호텔에 가까운 규모와 격식을 갖춘 공간이었다. 1층에는 온돌방이, 2층에는 일본식 다다미 연회장이 자리했다. 

소설에서는 현부자 소유의 여관으로, 토벌대장 임만수 일행의 숙소로 등장한다. 


 보성여관 카페, 숙박, 다다미방, 조식


해방 이후에도 상업 시설로 사용되다 2004년 문화재로 등록되었고, 현재는 카페와 소극장, 전시공간으로 운영되며 조정래 작가의 흔적을 담은 공간도 마련돼 있다. 몇 해 전 TV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에 나오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알쓸신잡 '보성여관 토크' / 사진 = tvN 캡쳐

 

벌교의 상징적 근원인 홍교는 ‘무지개 홍(虹)’과 ‘다리 교(橋)’를 뜻한다. ‘홍예교(虹蜺橋)’ 혹은 ‘아치교(arch bridge)’라고도 불리는 홍교는 교량 아래가 무지개처럼 반원형을 이루는 구조로, 영조 때인 18세기에 축조 되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홍예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또한 같은 형식의 홍예교이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을 이은 다리가 있다.”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 ‘벌교(筏橋)’처럼, 이 다리는 마을의 시작이자 중심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김범우가 다리 위에 멈춰 서서 지역의 역사와 시간을 되새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제의 철거 시도가 있었으나, 지역민들의 저항으로 끝내 지켜낸 다리이다.


 홍교(무지개 다리) / 사진 = 보성군

 

1919년에 지어진 벌교금융조합은 전형적인 일본식 관공서 건물로, 소설 속에서는 송기묵과 유주상이 조합장으로 등장한다. 내부에는 당시 사용되던 금고와 영업 대가 남아있으며, 지금은 화폐 역사 전시와 함께 『태백산맥』 원고 필사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벌교금융조합(위), 태백산맥 필사 체험(아래)


벌교 문학기행의 중심에는 2008년 개관한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다. 태백산맥을 형상화한 건물 안에는 조정래 작가의 1만 6500매에 달하는 육필 원고를 비롯해 600여 점에 이르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소설 집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벌교라는 공간의 의미, 작품을 둘러싼 이념 논쟁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문학관 인근에는 소설 속 소화의 집과 현 부자네 집이 재현되어 있고, ‘조정래 등산로’를 따라 자연과 문학을 함께 만날 수도 있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전시실

 

벌교에서 태어난 작곡가 채동선은 <고향>, <향수> 등 민족적 정서를 담은 수많은 가곡을 남겼다. 

복원된 생가와 채동선 음악당 앞에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의 친필 악보가 새겨져 있어, 문학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채동선 음악당 내부 / 사진 = 보성군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중도방죽이 제격이다. 일제강점기 벌교 갯벌을 간척한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中島)’의 한자를 우리 식으로 붙인 이름으로 갈대 사이로 이어진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의 아픈 흔적 위에 되찾은 평온이 겹쳐진다. 해 질 무렵의 풍경은 특히 인상적이다. 

 

 중도방죽


벌교를 이야기하면서 꼬막을 빼놓을 수는 없다.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벌교 꼬막은 여자만(汝自灣)의 찰진 갯벌에서 자란다. 얕은 개펄에서 손으로 캐는 참꼬막은 육즙이 풍부하고 바다 내음이 짙다. 

꼬막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로써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 성분이 적어 다이어트에 적당한 식품이다. 소설 속에서도 소화가 정하섭을 위해 차리는 아침상에 꼬막 요리가 등장하며, 남도의 삶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 너른 갯벌은 순천만과 함께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있다.


 겨울철 별미 꼬막 정식 / 사진 = 보성군

 

요즘 벌교 여행의 새로운 명소는 ‘모리씨 빵가게’이다. 아담하고 예쁜 외관과 버터와 우유 없이 만든 발효 빵으로 빵 순례자들에게 보성의 핫 플레이스이다. 가게 내부에서는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모리씨 빵가게 

벌교는 단순히 소설의 배경이 아니라, 문학과 역사, 자연과 삶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다. 

『태백산맥』을 읽고 이곳을 걷다 보면, 이야기는 책장을 넘어 풍경이 되고, 풍경은 다시 우리의 기억 속 역사로 남는다.



배성식 / 여행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 /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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