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곶에 가고 싶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일출 명소 ‘포항 호미곶’

배성식 기자

등록 2025-12-26 16:49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라고 하여 붙여진 ‘호미곶’

한반도 호랑이 기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호미곶의 랜드마크, 포항의 핫 플레이스 ‘상생의 손’

 포항의 일출 명소 '호미곶' / 사진 출처 = 포항시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포항 호미곶’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특별한 장소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떠오를 때, 바다와 하늘, 땅이 하나가 되는 이곳은 단순한 해맞이 명소를 넘어, 평화와 공존, 그리고 시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해안의 거친 바람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겨울 바다의 운치를 더하며, 이국적인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곶’이라 하면 육지가 바다 쪽으로 돌출한 지형을 의미하고, ‘호미’는 ‘호랑이 꼬리’란 뜻이다. ‘호미곶’은 예로부터 한반도의 지형을 호랑이가 앞발로 중국을 할퀴는 형태에 비유하며 이곳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 시대에는 한반도가 허리를 굽히고 팔짱 낀 채 중국에 인사하는 노인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중국을 향한 사대주의가 반영된 인식이었다.

구한말(대한제국 시기, 1897~1910년) 한일 강제 병합을 앞두고 일제는 국권 침탈을 위해 한반도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했는데,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는 한반도가 토끼 형상이라고 주장을 펼쳤다. 

그는 ‘조선산맥론’에서 “조선은 토끼가 서 있는 것과 같다. 전라도는 뒷다리에, 충청도는 앞다리에, 황해도와 평안도는 머리에, 함경도는 어울리지 않게 큰 귀에, 강원도에서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각각 해당된다.”라고 주장하였다.


 토기 형상론(고토 분지로)과 호랑이 형상론(최남선) / 잡지 <소년> 게재



조선은 일본이 무서워 중국으로 도망가는 토끼 모양이라는 것이다. 일제는 한민족의 나약함과 순응성을 강조하기 위해 학교 교육을 통해 ‘한반도 토끼 형상론’을 보급하였고, 이런 논리가 확대 재 생산되면서 조선인들에게 상식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에 분개한 육당 ‘최남선(1890~1957)’은 “한반도가 호랑이를 닮았다.”라는 ‘호랑이 형상론’으로 토끼 형상론에 반론을 제기했다. 일본에는 없는 호랑이, 그것도 중국을 향해 발을 들고 포효하는 호랑이 말이다.

1908년 11월, 최남선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지 <소년> 창간호에 <태백범>이라는 시와 함께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를 처음 그려 넣었다.


 잡지 <소년>에 화가 안중식이 그린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이후 호랑이 형상론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20세기 초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 등 한반도 지도가 다양한 형태의 호랑이 모습으로 그려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꼬리가 영일만 일대가 밋밋하게 처리되었고, 꼬리의 끝 부분이 서해안 변산반도에 위치함으로써 호미곶이 ‘호랑이의 꼬리’라는 이미지가 약해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 실행에 옮긴 사람이 바로 故 서상은(2025년 별세) 전 호미수(虎尾樹) 회장이다.


 서상은 호미수 초기 회장



호미곶이 고향인 그는 영일군수, 선산군수, 달성군수, 구미시장 등을 역임하고, 퇴임 후에는 우리 뇌리에 박혀 있는 호미곶이 ‘토끼 꼬리’가 아닌 ‘호랑이 꼬리’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나무가 없는 호미곶에 해송(곰솔)을 심자는 호미수 운동, 호미 예술제 개최, 호미곶 지명석 건립 등 호미곶의 자연환경과 생태계 복원 및 가치를 높이는데 헌신했다. 


1988년에 서상은 회장은 운사 성기열 화백에게 호랑이 꼬리 끝 부분이 장기갑(지금의 호미곶)에게 오도록 그려 달라고 요청했고, 성 화백은 ‘근역강산맹호기상도’라는 제목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 그림 두 점을 그렸다. 

이후 포항시에서는 성기열 화백의 <근역강산맹호기상도> 2점 중 등대박물관 소장 그림을 호미곶 관광지를 홍보하는 자료로 활용해 왔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좌: 작자 미상 / 우: 성기열 화백) 


서 회장의 노력으로 2002년에 장기곶이 호미곶으로, 장기곶 등대가 호미곶 등대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이 분위기를 이어받아 2010년에는 ‘대보면’이 ‘호미곶면’으로 변경되었다.

 

호미곶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조형물은 바로 ‘상생의 손’이다. 

바다의 오른손과 육지의 왼손이 마주하고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2000년 새천년 해맞이 행사를 위해 1999년에 조각하고 설치된 것으로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


 상생의 손(바다의 손과 육지의 손) / 사진 출처 = 포항시



국민 모두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로 특히 바다 쪽의 손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방향에 있어 호미곶의 랜드마크이자 포항을 대표하는 핫 플레이스이다.

제작 당시에 육지의 손과 바다의 손이 같은 색이었으나 갈매기들의 배설물로 인해 바다의 손의 색이 바뀌었다.


 상생의 손(바다의 손과 육지의 손)

 


육지에 있는 상생의 손 앞에는 1999년 12월 31일 서해안 변산반도의 마지막 일몰 햇빛으로 채화한 불씨,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2000년 1월 1일 영일만 첫 일출의 정기를 모아 채화한 불씨가 타고 있다. 

거기에 2000년 1월 1일 독도와 남태평양 피지섬의 일출 때 채화한 것으로 두 불씨를 합하여 불씨 함에 담았다. 

피지섬의 햇빛을 채화한 이유는 이곳이 가장 동쪽에 있어서 날짜 변경선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채화 불씨(변산반도, 영일만, 독도 및 피지섬)



호미곶의 또 다른 보물은 ‘호미곶 등대박물관’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 중 하나로, 1907년에 일본 선박이 대보리 앞바다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맞아 1908년에 준공되었다. 

높이 26.4m의 팔각형으로 날렵하게 위로 솟아 오른 외곽선, 정교한 박공지붕, 오얏꽃 문양(대한제국을 상징), 이중벽 구조 설계로 신고전주의 미학, 구조적 안정성, 그리고 대한제국 등대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아 2022년 ‘IALA 세계등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국내외 다양한 등대 관련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등대의 역사와 항로의 변화, 그리고 바다를 지키는 이들의 삶을 느끼고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호미곶 느린 우체통은 엽서를 작성할 수 있는 곳으로 이 우체통의 우편물은 매년 6월, 12월에 실제로 발송된다. 


 호미곶 등대

 


호미곶 해맞이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백만 평 규모로 조성된 호미반도 경관농업 단지에는 매년 3월이면 유채꽃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호미반도 경관농업 단지 유채꽃




배성식 / 여행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 /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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