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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의 합작품 ‘짜장면’ : 중국의 작장면에서 기원, 일본의 단무지로 느끼함을 잡고, 한국 특유의 소스로 대중화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01-18 10:44

중국인들의 아편 소비 증가로 산둥반도 해삼에 대한 수요 확대

해삼 절임에 사용된 식용 소다가 밀가루 반죽에 응용되며 수타면 탄생

임오군란(1882년)을 계기로 한국에 전래되어 일본의 단무지와 결합



짜장면은 중국에서 유래한 음식이지만, 오늘날에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중국에는 한국식 짜장면과 같은 형태의 음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사실상 한국 음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식당에서 하루에 판매되는 짜장면은 약 600만 그릇에 달하며, 짜파게티와 같은 유사 짜장면류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약 800만 그릇에 이른다. 이는 한국인 6명 중 1명이 매일 짜장면을 먹고 있는 셈으로, 짜장면이 일상 속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짜장면의 탄생은 1840년대 중국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아편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면직물을 대량 생산했으며, 1793년 9월 영국 특사 ‘조지 메카트니’는 이를 청나라에 수출하기 위해 ‘건륭제(1711~1799)’를 알현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는 이미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면직물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고, 가격 또한 영국산보다 저렴해 수출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청나라 '건륭제'를 알현하는 영국 특사 '조지 매카트니'


반면 중국의 복건성과 광동성에서 생산된 홍차는 영국으로 대량 수출되었다. 당시 영국 전역에는 약 2,000여 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으나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에 귀부인을 비롯한 여성들은 커피 대신 홍차를 즐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오후에 차를 마시는 ‘애프터눈 티’, 티파티, 로열 밀크티 문화가 이 무렵 자리 잡게 되었다.

차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차를 보다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도자기 잔과 세트에 담아 마시기를 원했다. 


 영국 여성들의 애프터눈 티(홍차)


중국에서 제작된 도자기는 배를 통해 영국으로 운송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파손을 막기 위해 도자기 제조 시 소의 뼈를 갈아 넣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유래한 것이 바로 ‘본차이나(Bone China)’이다.

한편 ‘China’에서 대문자 C를 쓰면 중국을 뜻하지만, 소문자 ‘china’는 중국 도자기를 의미한다. 소의 뼈(Bone)를 섞어 만든 도자기라는 점에서 ‘본차이나’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고급 도자기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홍차의 대량 수입으로 인해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심화되자, 영국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역사적·도덕적으로 결코 해서는 안 될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다. 영국은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 북부에서 재배한 양귀비로 아편을 제조해 중국에 판매했다. 그 결과 청나라 황제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아편 중독이 확산되었고, 결국 1840년 아편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충돌로 이어지게 되었다.


 파이프로 아편을 흡입하는 중국인들 / 사진 =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청나라와 영국간 아편전쟁(1840년)


아편에 중독된 중국인들은 더 많은 아편을 섭취하기 위해 몸에 좋고 기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식품을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의 개성 홍삼에 주목하게 되었다. 당시 거상이었던 임상옥은 이 기회를 활용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는데, 조선 홍삼은 가격이 매우 비싸 중국의 부유층만이 소비할 수 있는 귀한 약재였다.



 거상 '임상옥'을 다룬 드라마 '상도' / 사진 = MBC


이에 일반 중국인들은 조선 홍삼 대신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바다의 삼’이라 불리던 산둥반도 연태의 해삼을 찾았다. 당시 산둥반도 해삼은 품질이 뛰어났는데, 잡은 해삼을 식용 소다에 담근 뒤 말리면 원형을 유지한 채 장기간 보관할 수 있어 베이징과 같은 내륙 지역으로도 유통이 가능해졌다.


산둥반도의 요리사들은 해삼을 절이고 남은 식용 소다를 밀가루 반죽에 활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면의 탄성이 많이 증가해 쉽게 끊어지지 않으며 색깔도 노란빛을 띠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쫄깃한 수타면이 탄생하게 되었다.


짜장면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은 춘장(春醬)이다. 춘장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봄(春)에 장을 담가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대파로 유명한 산둥반도에서 밀가루로 만든 ‘면장(面醬)’이 숙성되며 점점 검게 변하고, 파를 뜻하는 ‘총(蔥)’과 결합해 춘장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오늘날 짜장면에 사용되는 춘장은 밀가루와 콩을 발효시킨 장으로, 이러한 형태는 한국에서만 통용된다. 

이로써 짜장면의 핵심인 면과 춘장이 완성되었다.

 

비슷한 이름의 ‘작장면(炸醬麵)’은 한국의 짜장면과 맛과 형태가 다르다. ‘장을 튀겨 만든 국수’라는 뜻으로, 장의 색은 노란빛을 띠며 질감은 뻑뻑하고 기름기가 적은 대신 매우 짜다. 삶은 면 위에 볶은 면장과 각종 채소, 생마늘을 얹어 비벼 먹는 전형적인 중국 가정식 요리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된장 막국수’에 가깝다.

 

 중국 '작장면(炸醬麵)'


작장면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1882년 임오군란이다. 고종이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우대하고 기존의 구식 군대를 차별하자 반란이 일어났고, 이에 고종은 청나라에 군사 개입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제물포와 가까운 산둥반도 연태 지역의 약 3,000명 규모의 군사와 요리사들이 작장면과 함께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신식 부대 '별기군'


작장면은 가격이 비싸 조선인들은 쉽게 접할 수 없었고, 제물포 조계지에서 마주 보고 살던 중국인과 일본인들만 주로 먹었다. 일본인들은 처음 작장면을 접했을 때 느끼함을 줄이기 위해 자신들이 즐기던 다쿠앙(단무지)을 곁들여 먹었고, 이후 짜장면과 단무지는 자연스럽게 한 세트가 되었다.

 

‘다쿠앙’은 일본 에도 시대(1603~1868)에 ‘다쿠앙 소호’라는 승려가 무를 절여 저장식으로 만든 데서 유래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찰 음식이다. 전통적인 다쿠앙은 말린 무를 쌀겨에 절여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특유의 향과 감칠맛, 노란빛이 생긴다. 


 단무지 창시자 '다쿠앙 소호' 스님


오늘날 우리가 먹는 단무지는 식초, 설탕, 소금을 넣은 절임 액에 담근 것으로 맛이 상큼하고 달콤하다. 한때 ‘다쿠앙’이라는 일본식 명칭이 사용되기도 했으나, 일본어 잔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단무지’로 정착되었다.


 다쿠앙의 원조 

제물포 조계지가 있던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국내 최초로 ‘짜장면’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판매한 음식점 ‘공화춘’이 있다. 공화춘이라는 이름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공화국이 수립된 것을 기념해 붙인 것으로, ‘공화국의 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옛 공화춘을 인천시에서 매입 '짜장면 박물관'


한국의 짜장면은 이후 작장면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콤한 소스로 변화했다. 특히 1970년대에 들어 짜장면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쌀이 부족했던 시절 정부가 혼·분식 장려운동을 펼치며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가 대량 보급되었고, 이로 인해, 라면, 국수, 짜장면 같은 분식류가 크게 유행했다. 


졸업식이나 생일에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짜장면집을 찾는 풍경도 이 무렵부터 자리 잡았다. 힘들었던 시절, 비교적 부담 없이 외식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중국집이었다.


 1970년대 분식장려 운동(좌), 짜장면 박물관(우)

 

짜장면은 중국의 작장면에서 기원하고, 느끼함을 잡기 위해 일본에서 유래한 단무지가 곁들여졌으며, 여기에 한국 특유의 소스 변형과 현지화를 거치면서 발전한 음식이다. 따라서 짜장면은 한국·중국·일본의 음식이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자장면’과 ‘짜장면’ 중 어느 표현이 표준어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된소리를 쓰지 않은 ‘자장면’만 표준어로 인정되었으나, 2011년 국립국어원이 ‘짜장면’ 역시 표준어로 인정하면서 두 표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배성식 / 여행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 /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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