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특집] 스타와 팬들이 '어게인' 해서 '영웅시대' 를 열고, 그들의 '엔돌핀' 과 '닻별'이 되었다

박강민 기자

등록 2025-12-05 12:23

트로트 열풍 뒤엔 5060의 강력한 팬덤 문화가 뒷받침

'서사', '유희'가 담긴 팬클럽 이름은 정체성이자 자부심

본인을 잊고 살았던 중장년들에 자존심과 자존감 부여

□ 트로트 팬덤 이름 속에 숨겨진 ‘사랑의 암호’


MBN 트로트 가수에게 팬클럽은 단순한 ‘오빠 부대’가 아니다. 그들은 스타를 기획하고 홍보하고 지켜내는 거대한 기획사이자 무엇보다도 든든한 호위무사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트로트 열풍의 심장부에는 5060 중장년층이 주도하는 강력한 팬덤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스타와 맺는 관계가 팬클럽 ‘이름’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아이돌 못지않은 세계관(Universe)과 서사(Narrative), 그리고 재치 있는 언어유희가 담긴 팬클럽 명칭들은 단순한 이름을 넘어 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국내 최초 트로트 전문 종합미디어 ‘트롯뉴스(www.trotnews.co.kr)’는 2025년을 마감하면서 트로트 열풍의 주역인 스타들의 ‘팬클럽 명칭’을 유형별로 분석, 그 속에 담긴 팬들의 스타들에 대한 사랑의 암호를 해독해 보았다. 


 

1. “당신은 나를 비추는 영원한 별”

 

트로트 팬덤에서 가장 많이 차용되는 메타포는 바로 ‘별’이다. 어두운 밤길(인생의 힘든 시기)을 비춰주는 존재로서 스타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 김호중과 ‘아리스(Ariss)’: 서로가 서로의 별이 되다

‘트바로티’ 김호중의 팬덤 ‘아리스(Ariss)’는 이름부터 고귀한 예술적 감성을 담고 있다. 김호중의 음악적 뿌리인 오페라의 ‘아리아(Aria)’와 톱스타를 뜻하는 ‘스타(Star)’, 그리고 김호중이 사랑하는 팬들(s)을 합성해 만든 이름이다.

여기에는 “김호중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별들”이라는 뜻과 함께, “김호중만이 우리의 별이 아니라 팬들 또한 김호중을 비추는 별”이라는 수평적 연대감이 숨어있다. 

아리스들은 서로를 ‘식구(食口)’라고 부른다. 밥을 같이 먹는 가족처럼, 김호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끈끈한 정을 나누는 ‘보라색(Purple)’공동체임을 강조한다.


김호중 X 아리스 '주접이 풍년'=KBS

 

■ 김희재와 ‘희랑별’: 사랑으로 빚어낸 주황빛 은하수

다재다능한 끼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희욘세’ 김희재의 팬덤은 ‘희랑별’이다. ‘희재를 사랑하는 별들’의 줄임말인 이 이름에는 스타를 향한 팬들의 맹목적인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단순히 지켜보는 별이 아니라 ‘사랑(랑)’이라는 감정이 이름 한가운데 박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희재 특유의 애교 섞인 팬 사랑과 맞물려 팬덤 분위기 또한 매우 다정다감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팬들은 ‘오렌지색’ 물결을 이루며 김희재가 무대 위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날 수 있도록 조명 역할을 자처한다. 그들에게 김희재는 그냥 가수가 아니라,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치명적인 별’이다.


김희재 팬카페 '김희재와 희랑별


■ 박서진과 ‘닻별’: 항해의 길잡이가 되어

‘장구의 신’ 박서진의 팬덤 ‘닻별’은 카시오페이아자리의 순우리말이다. 뱃사람들이 밤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알려주는 별처럼, 박서진의 가수 인생 항로를 언제나 비춰주겠다는 헌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박서진 팬덤은 트로트계에서도 조직적인 버스 대절 응원 문화를 정착시킨 원조 격이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망망대해의 지표가 되는 ‘닻별’이라는 이름과 완벽하게 부합한다. 상징색인 ‘노란색’은 어둠 속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길잡이의 빛을 형상화한다.


박서진-타조엔터테인먼트


2. "너는 나의 비타민이자 엔돌핀"

 

이 유형의 팬덤명은 스타가 주는 ‘에너지’와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다.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직관적인 네이밍이 특징이다.

 

■ 박지현과 ‘엔돌핀’: 삶의 활력을 주는 활어 보이스

혜성처럼 등장한 ‘활어 보이스’ 박지현의 팬덤명은 ‘엔돌핀’이다.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훤칠한 비주얼로 보는 이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박지현의 매력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다.

팬들에게 박지현의 존재는 지루한 일상에 솟아나는 기쁨의 호르몬, 즉 엔돌핀 그 자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팬들은 그를 보며 삶의 활력을 얻고, 박지현 역시 팬들의 응원을 먹고 무대 위에서 펄떡이는 활어처럼 에너지를 발산한다. 최근 급부상한 팬덤답게 ‘화이트색’ 계열의 세련된 이미지를 추구하며, 젊고 역동적인 응원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박지현 SNS


■ 이찬원과 ‘찬스(Chan's)’: 나의 기회, 나의 행운

이찬원의 팬덤 ‘찬스(Chan's)’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걸작이다. ‘이찬원의 것(Chan’s)’이라는 소유의 의미와 그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기회(Chance)’이자 행운이라는 뜻을 동시에 내포한다.

팬들은 이찬원을 구수한 청국장 보이스라는 뜻의 ‘찬또배기’ 혹은 줄여서 ‘찬또’라고 부르며, 그가 가진 스마트하고 야무진 이미지에 열광한다. ‘찬스’라는 이름처럼 팬들은 이찬원이 활동하는 모든 곳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실어주는 ‘기회’의 역할을 자처한다. 공식 색상인 ‘로즈골드’는 고급스러우면서도 따뜻한 팬덤의 성향을 대변한다.



이찬원팬제공


■ 영탁과 ‘영탁이 딱이야’: 에너지가 곧 이름이 되다

영탁의 팬덤은 그의 히트곡 제목이나 유행어와 궤를 같이한다. 공식 팬카페 이름인 ‘영탁이 딱이야’는 그의 시그니처 인사법이자 히트곡 가사에서 유래했다. 

팬들을 지칭하는 애칭은 ‘내 사람들’이다.

이는 영탁의 노래 ‘찐이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등에서 보여준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와 맞물린다. 최근엔 ‘산탁클로스’라는 이름으로 기부 행사를 하기도 한다.

팬들 역시 영탁을 ‘탁걸리’, ‘박폭스’ 등으로 부르며 격식보다는 즐거움과 흥을 추구한다. ‘코발트블루’의 시원한 파란색 물결은 영탁 팬덤 특유의 청량감을 상징한다.



영탁sns


3. "다시 만난 우리의 인연은 운명"

 

스타와의 만남을 운명적인 재회나 굳건한 약속으로 해석하는 팬덤들이다. 이들의 이름에는 비장미와 감동적인 서사가 흐른다.

 

■ 송가인과 ‘어게인(AGAIN)’: 전설의 시작, 다시 만난 우리

대한민국 트로트 열풍의 도화선 역할을 톡톡히 해온 송가인의 팬덤은 ‘어게인(AGAIN)’이다. 이 이름에는 중의적인 뜻이 있다. “송가인을 다시(Again) 만났다”라는 운명적 재회의 의미와, “송가인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A gain)”라는 그들만의 신뢰와 자신감이 담겨 있다.

어게인은 트로트 팬덤의 조직력을 세상에 처음 알린 ‘핑크색 군단’이다. 

중장년층이 핑크색 옷과 모자를 맞춰 입고 전국을 누비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그들에게 송가인은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열정을 ‘다시’ 깨워준 존재이기에, 그 충성도와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송가인어게인-포켓돌스튜디오


■ 장민호와 ‘민호특공대’: 사슴을 지키는 호위무사들

‘트롯 신사’ 장민호의 팬덤 ‘민호특공대’는 1세대 아이돌 출신으로 긴 무명 시절을 견뎌낸 스타를 “이제는 우리가 지키겠다”라는 팬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부드럽고 젠틀한 ‘사슴’ 장민호와 강인한 ‘특공대’의 조합은 “순수한 우리 오빠는 우리가 보호한다”라는 팬들의 사랑과 강력한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흰색(White)과 민트색(Mint)’을 상징색으로 삼아 어떤 색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의리와 지지를 보여준다.



장민호와 ‘민호특공대’-고성군제공 

4. "너는 스케일이 달라… 우주를 줄게"

 

가장 거대하고 압도적인 팬덤은 이름에서부터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들은 스타를 단순한 가수가 아닌 하나의 ‘시대’나 ‘우주’로 격상시킨다.

 

■ 임영웅과 ‘영웅시대’: 이름이 곧 역사가 되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대 팬덤 ‘영웅시대’는 임영웅의 본명(Hero)을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웅장하게 활용했다. “앞으로 임영웅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예언적 메시지는 이제 현실이 되어 대한민국 가요계를 평정했다.

팬들은 스스로 ‘영시’라 칭하며, “건행(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이라는 시그니처 인사말로 서로를 축복한다. ‘영웅시대’는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 기부와 봉사 활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름 그대로 새로운 ‘시대 정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상징색인 ‘하늘색’은 이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임영웅’의 상징이다.



임영웅 = 물고기뮤직

 

■ 정동원과 ‘우주총동원’: 온 우주가 너를 사랑해

‘트로트 신동’에서 ‘AI 아이돌’까지 무한히 성장 중인 정동원의 팬덤은 ‘우주총동원’이다. 이름 ‘동원’을 활용해 “우주에 있는 모든 힘을 총동원해 너를 응원하겠다”라는 뜻과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어린 왕자 같은 정동원의 성장 서사에 맞춰 팬들은 이모, 삼촌, 할머니를 자처하다가도 때로는 그를 ‘본부장님’이라 부르며 역할 놀이에 심취하기도 한다. 

공식 색상인 ‘연두색’은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성장하는 정동원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정동원 = 더리포트

  


그들은 왜 팬덤과 이름에 집착하나?

 

전문가들은 트로트 팬덤의 독특한 네이밍 문화를 ‘중장년층의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로 해석한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 불리며 정작 자신의 이름은 희미해졌던 세대에게 ‘어게인’, ‘희랑별’, ‘엔돌핀’이라는 그들만의 소속감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열쇠다. 내가 ‘찬스’가 됨으로써 스타에게 행운을 준다는 효능감, ‘민호특공대’가 되어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자부심은 삶의 강력한 동력이 된다.

 

가수는 제목 따라가고, 팬덤은 이름 따라간다.

임영웅은 ‘영웅시대’를 열었고, 송가인은 팬들과 ‘어게인’ 했으며, 박지현은 팬들의 ‘엔돌핀’이 되었다. 이 재기발랄하고도 뭉클한 이름들은 스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팬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행복 선언문’이다.

스타와 팬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사랑을 함께하는 한 대한민국 트로트의 전성기는 절대 저물지 않을 것이다.

 

 

[참고] 팬클럽 용어 사전: 이것만 알면 나도 ‘덕질’ 고수!

 

팬클럽을 처음 접하는 팬덤들은 그들만의 용어에 어색하고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트로트 팬덤에서 자주 쓰이는 필수용어들을 정리했다.

 

△ 스밍(스트리밍):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를 반복재생하여 순위를 올리는 행위. 숨 쉬듯이 해야 한다고 하여 ‘숨스’라고도 한다.

△ 총공(총공격): 특정 시간대에 음원 다운로드, 투표, 댓글 달기 등을 독려하는 단체 행동

△ 덕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나 사람에 심취하여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

△ 조공: 스타에게 선물, 도시락 등을 보내는 것. 최근엔 기부 화환 등으로 대체되는 추세

△ 피켓팅: 피 튀기는 전쟁 같은 티켓팅. 임영웅 콘서트가 대표적

△ 포카(포토카드): 앨범 등에 들어있는 신용카드 크기의 스타 사진

△ n차 관람: 같은 영화나 공연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것. 영화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 등이 대표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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