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탐구_‘영웅시대’] 앨범판매 아이돌 위협-시청률 좌지우지... 대한민국 움직이는 ‘하늘색 권력’

박강민 기자

등록 2025-12-18 12:04

60대~70대 ‘영시’들 돋보기 쓰고 음원 스트리밍 방법 학습

경제력 갖춘 팬덤들 임영웅 광고하면 해당 상품 완판 위력

질서 지키며 쓰레기 줍기 등 성숙한 관람 문화와 예절도 특징

□ 트로트 팬덤 탐구 : 그들이 사는 세상 / 1. 임영웅과 ‘영웅시대’


국내 최초 트로트 전문 종합미디어 트롯뉴스(www.trotnews.co.kr)에서는 1,000만 트로트 팬 시대를 맞아 특별 기획 시리즈 ‘팬덤 탐구: 그들이 사는 세상’을 연재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팬클럽을 중심으로 트로트 팬덤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연재 순서는 특정 순위와 무관하며,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가장 뜨거운 화력을 보여주는 팬덤을 중심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은 단순히 가수를 응원하는 팬덤의 모습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트로트 열풍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향후 100년 이상 국민적 사랑을 받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 뿌리를 단단히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트롯뉴스는 천편일률적인 팬덤 소개가 아닌 각 팬클럽만이 가진 고유한 DNA(조직문화, 언어, 경제효과)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심층 해부하고자 합니다. 

이 기록들이 건강한 팬덤 문화를 확산시키고 더 많은 팬덤이 활동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사진 = 물고기뮤직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역사는 ‘영웅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노래 잘하는 트로트 가수를 좋아하는 중장년층의 모임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임영웅의 팬덤 ‘영웅시대’는 이제 앨범 판매량으로 K-POP 아이돌을 위협하고, 방송사의 시청률을 좌지우지하며, 기업의 마케팅 지도를 바꾸는 거대한 ‘문화 권력’이자 ‘사회 현상’이 되었다. 팬클럽에서는 서로를 ‘영시’라고 부르며 매일매일 접속해서 ‘덕질’을 독려한다.

 

트롯뉴스는 ‘트로트 팬덤 탐구’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팬덤을 자랑하는 ‘영웅시대’를 들여다보았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흔드는 그들의 막강한 조직력은 어디서 나오며 왜 그들은 임영웅에게 인생을 거는가? 그 궁금증을 탐구해 본다.

 

 스밍부터 투표까지 ‘공부하는 팬덤’의 탄생

 

‘영웅시대’를 정의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학구열’이다. 

과거의 팬 활동이 TV 앞에서 손뼉 치고, 공개방송에 방청하러 가는 정도였다면, 영웅시대의 팬덤은 IT 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전사’들이다. 

60대, 70대 할머니들도 돋보기를 쓰고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 음원 스트리밍(스밍) 방법을 배운다. 지역별로 ‘참된 덕후 교실’, ‘스밍 아카데미’가 열리고 젊은 팬들이 강사로 나서 멜론, 지니 가입법과 인기투표 앱에 들어가 임영웅에 ‘한 표’를 행사하는 사용법을 가르친다.

 

처음 가입한 ‘영시’들이 팬덤 활동 중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앞다투어 선배 ‘영시’들이 너무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준다.

이러한 ‘학습형 덕질’은 임영웅을 음악방송 1위로 만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서 시작됐다. 디지털로 무장된 손 빠르고, 발 빠른 아이돌 팬덤에 비해 느리고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물리적인 약점을 엄청난 노력과 열정, 조직력으로 극복한 것이다. 


사진 = 참된 덕후교실사진영웅시대밴드(나눔모임)제공

 이들의 팬덤 활동은 일상 속에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A 세대들이 집중적인 단기 화력을 통한 팬 활동을 하지만 이들은 매일매일 일정한 루틴을 통해 오랫동안 활동하는 끈기로 대응하는 것이다.

한 60대 팬은 “내 손으로 우리 가수를 1등 만들어줄 수 있다는 즐거움, 내가 늙지 않고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성취감이 나를 영웅시대로 살게 한다.”라고 고백한다. 

팬덤 활동 전엔 문자 정도에 머물던 ‘영시’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유튜브 팬카페는 물론 멜론, 지니, 벅스, 바이브, 애플 뮤직,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 등 또래 동료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사이트나 앱에 접속하여 ‘스트리밍’ 활동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들에게 덕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디지털 소외계층에서 디지털 주류로 편입되는 ‘사회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같은 덕질을 통해 자연스럽게 취득한 디지털 기술을 통해 팬카페 밖에서도 젊은이 못지않은 댓글 활동이나 SNS 소통을 자유자재로 하게 된 것은 60~70대들에겐 큰 수확이다.

 

 그가 광고하면 ‘완판’, ‘히어로 노믹스’ 현상

 

영웅시대의 구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0·20세대 아이돌 팬덤이 부모님 용돈으로 앨범을 산다면 50·60 영웅시대는 본인의 경제력으로 소비한다. 

임영웅이 광고 모델로 나선 자동차, 정수기, 의류는 기록적인 매출 상승을 기록했다. 이른바 ‘임영웅 효과’, ‘히어로 노믹스(Hero-nomics)’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소비가 맹목적인 과시가 아니라 ‘내 가수의 기를 살려주는 행위’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광고주가 임영웅을 모델로 했더니 대박 났다는 소리를 들어야 우리 가수가 롱런할 수 있다.”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또 임영웅에게 받은 ‘위로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기업들 역시 ‘영시’들의 충성심에 기대어 너도나도 임영웅을 모델로 기용하고 싶어 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죽은 상권도 살린다는 상암 월드컵경기장 콘서트가 ‘영시’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임영웅 공연이 있는 날이면 공연장 주변 식당은 물론 근처 편의점 매출까지 폭등시켰다. 

영웅시대는 단순히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가수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팬들은 전략적으로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사진 = '임영웅' 광고모음

 “우리는 가수의 얼굴이다.” ‘건행’의 철학 

 

영웅시대가 대중에게 호감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성숙한 관람 문화와 예절이다. 

임영웅이 늘 외치는 “건행(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이라는 인사말은 팬덤의 당연한 행동강령이 되었다.

콘서트장에서는 자신이 낸 쓰레기를 줍는 것은 기본이고, 진행요원들에게 90도로 인사하며, 거동이 불편한 동료 팬(영시)을 서로 부축한다. 

이는 “나의 행동이 곧 임영웅의 이미지”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내가 새치기를 하거나 욕을 하면 “임영웅 팬들은 왜 저러냐”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것이 가수에게 누가 된다는 것을 걱정한다. 

 

임영웅의 시축 행사만으로도 수만 명의 팬들을 모아 화제가 되었던 K리그에서도 영웅시대 팬들은 원정팀의 색과 같다는 이유로 어딜 가나 늘 함께했던 공식색상 ‘하늘색 옷’을 자제하고 일상복 응원을 펼치는가 하면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좌석을 정리하는 등 주변을 배려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이들은 지역마다 자발적으로 그룹 지어 기부와 봉사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도시락 봉사, 독거노인 돕기, 산불피해 지원 등 이들이 기부하는 금액은 1년에 수억~수십억 원으로 추산될 정도로 새로운 기부문화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품격 있는 덕질’은 중장년층 팬덤 문화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 영웅시대 봉사나눔방 '라온' 제공

  스타와 팬을 넘어선 ‘인생의 동반자’

 

그렇다면 왜 이들은 그 많은 가수 중에 임영웅을 선택했을까? 

전문가들은 임영웅의 서사가 중장년층의 삶을 위로하는 힘을 가졌다고 분석한다. 

TV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효자, 긴 무명 생활을 버텨낸 성실함, 그리고 잊고 있던 감성을 건드리는 목소리. 이 모든 것이 자식을 키우고 늙어가는 부모 세대에게 “고생했다, 당신의 삶도 빛난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사진 = 주접이 풍년 KBS

 영웅시대에게 임영웅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다. 

잃어버린 젊음이자, 이루지 못한 꿈이며, 동시에 자랑하고 싶은 아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헌신적이다. 

임영웅이 LA에서 콘서트를 하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영화를 개봉하면 N차 관람(같은 영화나 공연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것)으로 극장을 채운다. 

임영웅 역시 팬들을 ‘영웅시대 가족 여러분’이라 부르며 극진히 대우한다. 

이 쌍방향의 깊은 유대감이 영웅시대를 어느 팬덤보다도 강력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핵심이다.

 

 영웅시대, 팬덤을 넘어 문화유산으로

 

임영웅과 영웅시대가 걷는 길은 대한민국 가요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트로트로 뭉쳤고 트로트를 주로 좋아했던 그들은 트로트를 넘어 발라드, 팝, 댄스까지 섭렵하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고, 세대 갈등이 만연한 시대에 전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늘색 물결로 뒤덮인 공연장을 보라. 

그곳에는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가 아니라 ‘영웅시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청춘들이 있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임영웅의 시대는 쉽게 저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 막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진 = 물고기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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