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머리 위 10cm에 녹여낸 10년의 집념… '셜리 천'의 '1초 갓', 세계인의 자존감을 깨우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2-02 17:39
불문학도에서 디자이너로 불모지 한국의 고급모자 시장 개척
끝없는 실패 끝에 ‘1초 갓’ 개발 성공… 서울시 콜라보 굿즈 선정
시선 집중 받는 무대에서 모자는 이미지 결정짓는 ‘신의 한 수’
남진 마도로스 모자 단골… 심수봉엔 ‘베일’ 드리운 복고풍 추천
● 한국 대표 모자 디자이너 ‘루이엘’ 셜리 천 인터뷰
대한민국의 대표 모자 디자이너인 셜리 천(천순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을 탐구하던 문학도가 한국 고급모자의 대명사인 ‘루이엘(luielle)’을 일궈내기까지, 그녀의 삶은 모자의 유려한 곡선 속에 숨겨진 단단한 열정 그 자체였다.
트롯뉴스(www.trotnews.co.kr)가 최근 서울시 ‘서울마이소울’ 1초 갓으로 K-컬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그녀를 만나, 모자에 투영된 철학과 트로트 스타들의 패션, 굿즈 등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루이엘' 셜리 천 디자이너 / 본인 제공
여행길에 만난 폭설 운명을 바꾸다
“어려서부터 워낙 책을 좋아했어요. 꼭 불문학이 아니더라도 커서 작가가 되거나, 적어도 평생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살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죠.”
그녀의 인생을 바꾼 건 프랑스에서 불문학도를 꿈꾸던 중, 친구들과 함께 포도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의 ‘디종(Dijon)’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 시작이었다.
때마침 프랑스에는 40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도시는 마비됐고, 그녀와 일행은 기숙사에 한 달간 갇히는 신세가 됐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까르푸에 갔어요, 공교롭게 나를 빼고는 모두 의상학과 전공이던 친구들이 ‘옷감 하나 골라봐, 내가 옷 하나 만들어 줄게’라고 제안하더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옷감을 고른 순간이었어요.”
숙소에 돌아와 구매한 옷감을 가지고 미싱 작업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묘한 충격을 받았다. “문학은 남이 만들어 놓은 창작물을 연구하는 학문이잖아요. 내가 직접 만드는 게 아니죠. 그런데 친구들은 달랐어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즉석에서 만질 수 있는 ‘현물’을 바로 만들어내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습니다.”
셜리 천은 우연한 기회로 인해 운명적으로 문학도에서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불문학도 꿈 접고 모자 학교에 입학
호기심에 시작한 미싱은 생각보다 깊이 그녀를 파고들었다. 기숙사에 갇힌 한 달 동안 친구에게 미싱을 배우며 테이블보, 커튼, 이불 커버 등을 만들었다. 점차 복잡한 블라우스까지 완성해 나가며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을 발견했다.
파리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이 길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그녀에게 한 일본인 지인이 모자 학교 주소를 건넸다.
“마침 그 학교는 수강 전 청강을 허락해 줬어요. 단 1시간의 청강. 수업을 듣고 내려오자마자 바로 짐을 싸서 파리로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파리의 유서 깊은 모자 전문학교 C.M.T(Course Modiste Toiliste)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꿈꿔온 불문학을 순간에 놓기는 쉽지 않았다. 학문을 중단한다는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한동안 ‘이중생활’을 자처했다. 낮에는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모자 학교 야간 과정에서 밤을 지새우며 작업을 이어갔다.
아시아인에게는 문턱이 높았던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해야 했다. 하지만 그 이질적인 두 세계의 결합이 지금의 ‘루이엘’을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문학적 서사는 디자인의 영감이, 깐깐한 장인 정신은 품질의 근간이 되었다.
문학과 모자, 언뜻 보기엔 거리가 느껴지는데 둘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었을까?
셜리 천은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분명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모자를 디자인할 때 가장 큰 영감을 받는 원천이 바로 소설과 영화거든요.”
그녀는 특히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매료되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다.
“인류 역사상 예술과 문화가 가장 풍요로웠던 그 시절, 모자는 패션의 완성이자 필수품이었죠.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당시의 미학은 저에게 시각적, 감각적 영감의 소재가 됩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모자라는 구체적인 오브제로 형상화되는 셈이죠.”
한국의 정서를 입힌 ‘루이엘 스타일’ 완성
하지만 유럽의 화려한 예술성이 한국의 대중문화와 만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그녀는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한국의 모자 회사 세 곳에 보냈다. 가장 먼저 응답한 곳은 당시 업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OO 모자’였다.
“귀국하자마자 디자인 실장으로 출근을 시작했어요. 제 밑으로 8명의 디자이너가 있었죠. 파리에서 배운 것을 한국 시장에 검증해 볼 틈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된 겁니다.”
유럽의 감성을 그대로 옮겨온 그녀의 디자인은 초기 시장 반응에서 고배를 마셨다. 런웨이에서나 볼 법한 서구적인 모자들은 당시 한국인들의 정서나 일상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 모자만 잘 안 팔리더라고요. 한국적인 미감을 정확히 짚어낸 후배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따라갈 수 없었죠. 당시 저에게는 현실 감각이 부족했던 겁니다.”
그녀는 그때의 좌절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파리가 기술과 예술을 가르쳐준 곳이라면, OO 모자는 그녀에게 ‘제2의 학교’가 되어주었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한국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대중적인 모자의 조건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학습했다.
“현장에서 배운 현실 감각은 독립 후 큰 자산이 됐습니다. 파리에서 익힌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기법에 한국적인 실용성과 미감을 더하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현재 그녀의 아이덴티티가 된 ‘루이엘 스타일’이다.
문학적 낭만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의 머리 위에 자연스럽게 얹어지는 모자, 그녀의 디자인은 그렇게 두 세계의 완벽한 교집합을 찾아냈다.
영화 속 인물에 ‘스토리텔링’을 얹다
영화'암살' 장면
그녀의 감각은 매장을 넘어 충무로의 스크린까지 사로잡았다. 영화 ‘암살’과 ‘아가씨’ 등 시대를 정교하게 고증해야 하는 대작 영화에서 인물의 캐릭터를 완성한 것은 바로 그녀의 모자들이었다.
“벨 에포크 시대의 영감이 영화적 배경과 만날 때 가장 즐거운 작업이 됩니다. 모자는 단순히 머리에 쓰는 도구가 아니라, 그 인물의 신분과 성격, 그리고 시대의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기 때문이죠.”
그녀가 제작한 모자들은 스크린 안에서 배우들의 표정만큼이나 깊은 서사를 전달하며, 한국 영화의 미학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많은 작업 중 그녀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은 영화 ‘아가씨’에서 주인공 김민희가 썼던 ‘하얀색 모자’다. 이 모자는 단순히 귀족적인 우아함을 드러내는 소품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극 중 하녀인 김태리가 아가씨의 그 하얀 모자를 몰래 써보는 장면이 있어요. 사실 천한 신분인 하녀에게 그 화려한 모자가 객관적으로 잘 어울린다고 보기는 어렵죠. 하지만 그 순간 모자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꿈의 상징’이 됩니다. ‘나도 언젠가 잘 되면 저 모자를 쓸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 그 간절한 열망이 그 하얀 모자 하나에 담겨 있는 셈이죠.”
영화'아가씨' 장면
“모자가 안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많은 이들이 “나는 모자가 안 어울려”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셜리 천의 생각은 다르다.
“그 말은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싶다.’라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에요. 모자를 잘 쓰는 최고의 방법은 기술이 아니라 ‘자신감’입니다. 모자를 썼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자연스럽고 당당한 태도, 때로는 약간의 뻔뻔함이 모자를 완성하죠.”
그녀는 모자 문화가 발달한 영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들며, 모자가 가진 ‘귀족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거 프랑스어에 모자를 쓰지 않은 머리를 뜻하는 ‘뉴테트(Nu-tête)’라는 말이 하층민을 상징했듯, 모자는 예로부터 예의와 격식을 갖춘 이들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이다.
‘자존감의 10cm’ 모자의 마법
누군가에게는 신분의 상징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으로 다가가는 모자. 그녀에게 모자의 정의를 묻자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모자는 자존감의 10cm’라고 생각해요. 모자 하나를 쓰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자세가 당당해지고 눈빛이 달라지죠. 정수리 위 10cm의 높이가 주는 마법 같은 변화, 그것이 제가 평생 모자를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그녀를 국내 최초의 모자 박물관(전주) 설립과 더불어, 남편인 ‘모자 박사’ 조현종 대표와의 공동 경영으로 이끌었다. 부부는 모자를 단순히 패션 아이템이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인류학적 자산으로 정착시키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전주 모자박물관 외부와 내부 / 전북특별자치도 공식 블로그
전통의 현대화 ‘1초 갓’을 완성하다
최근 그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작업 중 하나가 우리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특히 한국 고유의 ‘갓’을 일상에서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재해석한 ‘1초 갓’은 서울시 콜라보 굿즈로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파리에서 배운 오트쿠튀르 기술로 우리 전통의 선을 살려내는 작업은 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죠. 서구의 모자가 꿈의 상징이었다면, 이제 우리의 갓이 전 세계인의 머리 위에서 새로운 자존감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 패션 사에서 모자는 오랫동안 일부 연예인들의 전유물이나 어르신들의 중절모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70~80년대 하이틴 스타나 아이돌 그룹 H.O.T 같은 이들이 모자 붐을 일으키며 대중화의 길을 닦았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모자’에 대한 갈증은 존재했다.
그 갈증의 끝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1초 갓’이다. 셜리 천 디자이너는 서구적 영감을 더하는 대신, 우리 전통 ‘갓’ 본연의 아름다움을 현대인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데 집중했다.
“갓은 우리 전통 모자 중에서도 단연 최고봉입니다. 독보적인 비율과 외형적 아름다움을 갖췄죠. 하지만 왜 현대인들은 갓을 쓰지 않을까? 그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분석한 이유는 명확했다.
갓은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얹는’ 구조라 쉽게 떨어지고, 부피가 커서 보관과 휴대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남편인 조현종 관장과 함께 연구에 매달린 시간만 무려 10년이다.
“수많은 소재를 시험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접을 수 있으면서도 형태가 복원되는 특수 소재를 개발했죠. 쉽게 접어 가방에 쏙 넣었다가 필요할 때 1초 만에 펼쳐 쓰는, 그래서 이름도 ‘1초 갓’입니다.”
'1초 갓'을 설명하고 있는 셜리 천과 조현종 관장
‘킹덤’과 ‘K-데드햇’ 그리고 ‘케데헌’
집념의 10년은 운명적인 타이밍과 맞물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해외 팬들 사이에서 갓이 ‘K-데드햇(K-Death Hat)’이라 불리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케데헌(K-Pop Demon Hunters)’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10년 연구에 대한 하늘의 선물 같았죠. K-컬처가 세계 중심에 선 지금, 서울시와 협업해 공식 기념품으로 출시까지 하게 됐으니 이제 갓은 한국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굿즈가 됐다고 자부합니다.”
그녀는 갓의 대중화를 위해 사이즈의 고정관념도 깼다. 오리지널 크기뿐만 아니라 장식용으로 쓸 수 있는 ‘미니 갓’을 선보인 것.
“영국의 로열 에스코트 같은 파티에서 여성들이 머리에 얹는 ‘페시네이터(Fascinator)’처럼, 해외 여성들은 미니 갓을 아주 세련된 패션 아이템으로 이해합니다. 아이들의 돌 사진 소품은 물론, 반려동물용 갓으로도 활용되죠.”
멕시코의 ‘솜브레로’, 베트남의 ‘논라(Nón Lá)’처럼 한국에 오면 누구나 하나쯤 사고 싶은 상징적인 모자. 셜리 천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탄생한 ‘1초 갓’은 이제 박물관의 박제를 넘어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트로트의 선율 위 ‘1%의 마침표’
최근 K-POP은 물론 발레 공연에서도 ‘갓’을 활용하는 등 모자가 무대 연출의 핵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트로트 가수들에게도 모자가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셜리 천은 “그럼요, 확실한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트로트 가수는 아이돌처럼 격렬한 춤을 추기보다 정적인 자세로 노래의 감성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수록 시선이 집중되는 얼굴 근처의 스타일링, 즉 모자가 이미지를 결정짓는 결정적 한 수가 됩니다.”
“옷을 다 입었는데도 1% 부족해 보일 때, 그 빈틈을 채워주는 것이 모자입니다. 특히 연예인은 천의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죠. 얼굴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지를 단번에 변신시킬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모자입니다.”
그녀는 트로트 가수들이 무대 컨셉에 맞춰 모자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노래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강력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셜리 천은 아티스트의 음색과 이미지에 따른 맞춤형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그녀가 평소 존경하는 가수 심수봉에게는 신비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천했다.
“심수봉 씨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처연함과 신비로운 기조가 있어요. 직접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진정성도 깊죠. 그분께는 눈을 살짝 가리는 ‘베일(Veil)’을 드리운 복고풍 모자를 씌워드리고 싶어요. 그 신비로운 이미지가 베일 너머로 더욱 부각될 겁니다.”
트로트 무대의 거장 남진 씨는 ‘루이엘’의 오랜 단골이다.
“남진 선생님은 자신의 남성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에 딱 맞는 ‘마도로스 모자’를 당당하게 소화하는 그의 태도는 모자를 잘 쓰는 최고의 비법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셜리 천은 “모자를 잘 쓰는 방법은 기술이 아니라 바로 ‘이 모자는 내 것’이라는 자신감, 즉 에티튜드(Attitude) 입니다.”라고 강조한다.
“남진 선생님은 본인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계세요. 고향 목포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마도로스 모자를 컬러별로 소장하고 계시죠. 남성적이고 진취적인 그분의 에너지와 마도로스 캡의 궁합은 정말 독보적입니다.”
트로트 반짝이 옷은 이제 그만
그녀는 최근 트로트계의 패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과거의 전유물이었던 과도한 ‘반짝이 의상’이 사라지고, 록 시크(Rock Chic) 스타일이나 세련된 일상복 형태의 무대 의상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임영웅 씨의 상암 공연을 보니 찢어진 청바지에 록 스타일을 매치하더군요. 매우 고무적인 변화입니다. 의상이 현대적으로 바뀐 만큼, 그 완성도를 높여줄 ‘모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전문가의 시선으로 볼 때, 지금의 세련된 의상에 정교하게 디자인된 모자가 더해진다면 아티스트의 아우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질 겁니다.”
‘모자 굿즈’로 팬덤의 품격 높이자
그녀는 트로트 팬덤 문화에 대해서도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 수만 명에 달하는 팬덤이 수십만 원짜리 단체 점퍼를 입고 응원하는 모습은 열정적이지만, 패션의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굿즈(Goods)도 진화해야 합니다.
천편일률적인 점퍼 대신 가수의 이미지를 담은 세련된 모자를 함께 쓴다면 팬덤의 이미지는 한층 더 고급스러워질 거예요. ‘나도 가수처럼 당당하게 모자를 쓴다.’라는 자부심을 팬들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연예인들이 사랑하는 모자 '루이엘'
모자 미학과 대중문화 동행을 꿈꾸다
트로트 무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과도한 ‘반짝이 의상’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최근 임영웅이 선보인 찢어진 청바지와 록 시크(Rock Chic) 스타일은 트로트가 이제는 과거에 머문 장르가 아님을 선포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무대 의상이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변주될수록, 전문가의 시선은 자연스레 패션의 완성이자 ‘마지막 1%의 정점’인 모자로 향한다.
“세련된 의상 위에 정교하게 디자인된 모자가 얹어질 때, 아티스트의 아우라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 무대 위 거장의 품격을 결정짓는 가장 완벽한 마침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미학적 변화의 끝에는 ‘기록’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자리한다.
가왕 나훈아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투영했던 모자, 국민 오빠 남진의 진취적인 에너지를 담아낸 마도로스 캡, 그리고 시대의 아이콘 임영웅이 무대 위에서 땀 흘리며 썼던 현대적인 디자인들까지. 이 모자들이 모자박물관과 트롯뉴스가 추진하는 ‘트로트문화관’에 전시되는 날, 팬들은 단순한 소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스타의 뜨거운 생애와 그들이 남긴 서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디자이너 셜리 천. 그녀의 섬세한 손끝에서 피어날 모자의 미학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대중문화사의 가장 높은 곳에서 영원히 빛나는 기록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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