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높아진 팬들 좀 더 세련된 사운드와 고품질 음악 요구
꺾기 대신 그루브, 뽕짝 대신 신스팝… ‘장르의 경계 무너져
이찬원부터 영탁까지, 2025년은 ‘이지 리스닝’ 트로트의 원년
□ 2025년 트로트 트랜드 진단 / 1. 전통적 장르의 파괴
2025년 12월, 대한민국 음원 차트 상위권을 대거 차지하고 있는 트로트 곡들을 재생하면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간드러진 비브라토(Vibrato)와 4분의 2박자의 쿵작거리는 리듬, 소위, ‘뽕 끼’라고 불리던 트로트의 필수 요소들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의 전형성을 탈피한 그 자리는 세련된 어쿠스틱 선율, 몽환적인 신디사이저, 담백한 발라드 창법이 대체했다. 트로트는 이제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던 ‘흘러간 노래’가 아니다.
10대 손녀와 60대 할머니가 이어폰을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성인가요(Adult Contemporary)’로 완벽히 진화했다.
‘트롯뉴스(www.trotnews.co.kr)’는 2025년 트로트 시장을 대변하는 ‘탈(脫) 장르’와 ‘팝(Pop)의 이식’ 등 주요 현상을 중심으로 이 장르의 진화적 움직임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진또배기’ 이찬원의 ‘찬란(燦爛)’한 변신
가장 놀라운 변신은 ‘꺽기의 달인’, ‘청국장 보이스’로 불리며 정통 트로트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이찬원에게서 일어났다.
2025년 10월 발매된 그의 정규 2집 ‘찬란(燦爛)’은 트로트 가수의 앨범이라기보다 팝 가수의 컴백 앨범에 가깝다.
컨트리와 포크의 만남으로 평가되는 타이틀곡 ‘오늘은 왠지’는 도입부부터 과감하다. 화려한 브라스(Brass)밴드 사운드 대신 잔잔하고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브러쉬 사운드가 곡을 이끈다. 미국의 컨트리 팝(Country Pop)이나 7080 시절의 포크 송을 연상시키는 이 곡에서 이찬원은 자신의 장기인 ‘긁는 창법(Gravelly Voice)’을 구사하지 않는다.
대신 말하듯 편안하게 내뱉는 창법을 구사하며 멜로디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앨범의 다른 수록곡들 역시 블루스, 록, 펑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뽕 끼’를 쫙 뺀 그의 목소리는 어떤 반주 위에서도 이질감 없이 녹아든다.
이찬원'오늘은 왠지'=KBS 뮤직뱅크
이찬원의 어쩌면 생소한 신곡에 대해 팬들은 “이찬원이 이런 노래를?”, “운전할 때 듣기 딱 좋다”는 등 예상외로 긍정 평가로 이어졌다. 음원 사이트와 팬 카페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세련됨”과 “편안함”이 공통된 평가 키워드이다.
“예전 트로트는 솔직히 카페에서 듣기엔 좀 민망했는데 이번 앨범은 고급스러운 팝송 같아요. 운전하면서 계속 듣게 됩니다.” (40대 팬클럽회원) “우리 찬원 님 목소리에 이런 부드러움이 있었나요? 꺾기 없이도 이렇게 감동을 주다니 진짜 가수가 되셨네요.” (50대 여성 팬) “엄마가 듣길래 옆에서 들었는데 인디 밴드 음악인 줄 알았음. 내 플레이리스트에도 추가함.” (20대 자녀)
영탁, 트로트를 클럽 무대로 올리다!
영탁은 트로트의 리듬을 개혁했다. 그의 히트곡 ‘Super Super’는 촌스러움을 거부한 레트로 디스코와 신스팝의 결합으로 트로트 차트뿐만 아니라 댄스 차트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곡은 1980년대 유행했던 신스팝(Synth-pop, 1970년대 후반 신시사이저를 주축으로 한 팝 장르) 사운드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EDM 소스를 섞었다. 멜로디 라인은 트로트 특유의 구슬픔 대신 직선적이고 중독성 강한 훅(Hook)으로 채워졌다.
음악만 떼어 놓고 들으면 아이돌 그룹의 레트로 컨셉의 곡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영탁은 리듬을 타는 발성과 감각적인 비트 쪼개기 등을 통해 아이돌 음악과의 경계를 허물며 트로트를 ‘감상용 음악’에서 ‘노는 음악’으로 변모시켰다.
영탁 = ‘Super Super’ MV
“이 노래 힙(Hip)하다” 영탁의 신선한 시도는 긍정 평가와 함께 젊은 층의 유입에 기여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 듣는데 비트가 미쳤어요. 트로트라고 무시했는데 아니네요” (30대 팬) “틱톡 챌린지 영상 보고 노래 찾았는데 영탁 형님이라니…. 트로트가 이렇게 힙할 수 있나요?”(10대 학생) 이러한 반응은 영탁의 음악이 ‘트로트 팬덤’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대중적인 ‘파티 뮤직’으로 까지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2025년 트로트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싱글 위주의 시장을 뒤집은 ‘종합 예술’로서의 트로트‘명반’의 탄생이다.
임영웅과 송가인은 싱글 히트에 급급하지 않고 앨범 전체의 서사와 완성도에 집중하며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임영웅 ‘IM HERO 2’ 장르 백화점의 완성
물고기뮤직
임영웅의 2집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K-트로트의 스펙트럼을 넓힌 교과서”로 불린다. R&B의 그루브, 재즈의 스윙감, 정통 발라드의 호소력이 한 앨범 안에서 공존한다.
팬덤들 반응도 역시 폭발적이다. “영웅 님 노래는 이제 장르 구분이 의미가 없어요. 그냥 ‘임영웅 장르’입니다.”, “수록곡 하나하나가 버릴 게 없어서 앨범 전체를 무한 반복(스밍) 하게 됩니다.”
송가인 ‘가인; 달’ 국악과 팝 절묘한 크로스오버
제이지스타엔터테인먼트
송가인은 자신의 뿌리인 ‘국악’을 놓지 않으면서도 과감한 팝적 시도를 감행했다. 라틴 펑키 리듬 위에 판소리 창법을 얹거나 슬로우 록 사운드에 구슬픈 트로트 감성을 섞는 식이다.
이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하는 시도다.
팬덤들도 크게 환호했다. “한이 서려 있으면서도 촌스럽지 않다.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웅장함이 느껴진다.”, “트로트가 이렇게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걸 가인 님이 보여줬다.”
자신의 1집 수록곡 ‘가인이어라’의 중학교 음악 교과서 공식 등재로 어느 해 보다도 큰 경사를 맞이했던 송가인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로트 가수로서의 입지를 서서히 다져가고 있다.
왜 그들은 '뽕 끼'를 버렸나?
왜 2025년의 트로트 가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뽕 끼’를 덜어내고 있을까?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이를 ‘팬덤의 변화’와 ‘시장의 포화’에서 찾는다.
초기 트로트 붐을 이끌었던 팬덤이 이제는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접하며 귀가 뜨였다. 팬덤들도 그만큼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다. 5060세대 역시 과거의 천편일률적인 트로트 사운드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제 좀 더 세련된 사운드와 고품질의 음악을 요구하고 있다.
또 과거 트로트 가수들의 주 수입원이 지역 축제나 행사였다면 이제는 콘서트와 음원 스트리밍, 앨범 판매가 주류가 되었다.
행사장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단순한 리듬의 자극적인 ‘행사용 음악’보다는 팬들이 일상에서 이어폰으로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는 ‘편안한 음악(Easy Listening)’이 상업적으로도 더 유리해진 것이다.
K-팝이 세계를 점령했듯 K-트로트 역시 글로벌 시장을 넘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해외 음악팬들에게 낯선 ‘뽕끼’ 대신 익숙한 팝 사운드에 한국적 감성을 입히는 전략은 글로벌 진출을 위한 필수적인 현지화 과정으로 해석된다.
시대와 호흡하여 끝없이 확장해야!
2025년은 트로트가 스스로 껍데기를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온 원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례 없는 새로운 시도의 신곡들이 등장했다.
누군가는 “트로트의 맛이 사라졌다”라고 아쉬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찬원의 컨트리, 영탁의 디스코, 임영웅의 발라드는 트로트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며 끝없이 확장하는 가능성의 대륙임을 증명했다.
대중은 이제 장르의 순수성만을 따지지 않는다. “노래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을 움직이는가?” 오직 이 기준만이 존재할 뿐이다.
‘뽕 끼’를 덜어내고 ‘팝’을 입은 트로트, 우리는 그것을 이제 ‘한국형 어덜트 팝(K-Adult Pop)’ 이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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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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