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2] 고음보다 '진심', 기교보다 '이야기'… ‘흥’의 시대를 보내고 ‘위로의 시대’를 열다

박강민 기자

등록 2025-12-15 10:06

"춤추는 관광버스 시대는 갔다"…. 고속도로에서 침실로, 무대의 이동

임영웅·손태진·전유진 등이 건네는 '치유의 연가' 안방 1열을 장악

□ 2025년 트로트 트랜드 진단 / 2. 막춤 대신 감성의 교감으로


사진 = Stock photography 

불과 수년 전만 해도 트로트의 미덕은 단연 ‘흥(Heung)’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 퍼지던 단순하면서 반복되는 빠른 비트, 관광버스 안을 들썩이게 만들던 일명 ‘뽕짝’ 리듬이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가수는 더 화려하고 극적으로 꺾어야 했고, 관객은 더 신나게 흔들면서 춤춰야 했다. 하지만 2025년, 트로트의 공기가 바뀌고 있다. 

 

각종 차트를 점령한 트로트 신곡들은 늦은 밤 혼자서 방 불을 끄고 이어폰으로 듣기 좋은 서정적인 노래들이다. 대중은 이제 트로트 가수에게서 ‘단순한 즐거움(Entertainment)’을 넘어선 ‘삶의 위로(Consolation)’와 ‘정서적 공감(Empathy)’을 갈구한다. 

바야흐로 ‘감성 트로트’, ‘발라드 트로트’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왜 트로트를 들으며 춤추는 대신 눈물을 훔치는 감성적 교감을 하게 되었을까?

 

 

트로트, ‘고품격 발라드’의 옷을 입다!

 

2025년 트로트의 가장 큰 음악적 변화는 과장된 ‘뽕 끼’를 덜어낸 ‘담백함’이다. 과거 트로트의 필수 요소였던 과도한 바이브레이션과 인위적인 꺾기 창법이 퇴조하고, 그 자리를 성인 발라드나 클래식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절제되고 세련된 창법이 채우고 있다.

 

- 손태진 성악과 트로트의 황금비율  

2025년 11월 발매된 손태진의 신곡 ‘사랑의 멜로디’는 이 같은 트로트 트랜드 변화 흐름의 결정판이다. ‘팬텀싱어’ 우승자 출신인 그는 성악 발성을 베이스로 하되, 대중가요의 감성을 절묘하게 섞은 ‘성악 트로트(Opera Trot)’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는 관객들을 향해 고음을 지르며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중저음의 따뜻한 목소리로 말하듯이 가사를 건넨다. 키워드는 ‘온기’다.

오케스트라 현악 세션이 곡을 감싸고, 손태진의 목소리는 악기처럼 부드럽게 얹힌다. 이는 기존 트로트보다는 고급스러운 드라마 OST나 클래식 가곡에 더 가깝다.

팬덤들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태진 님의 노래는 듣고 있으면 고급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기분이에요.”, “트로트가 이렇게 우아할 수 있다니…. 내 마음을 귀하게 대접해 주는 느낌입니다.”


사진=손태진 '사랑의 멜로디' MV

임영웅은 이미 ‘트로트’라는 장르 규정이 무의미한 트로트가 낳은 대표적인 보컬리스트다. 

그의 곡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전형적인 발라드 문법을 따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장르를 초월하는 감성과 정서(Sentiment)는 한국적인 ‘한’과 ‘정’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어 트로트 팬덤과 발라드 팬덤을 동시에 흡수한다. 그는 자극적인 기교 없이도 호흡 하나만으로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임영웅은 트로트를 ‘촌스러운 노래’에서 ‘가장 듣고 싶은 명품 가요’로 격상시켰고, 그의 발라드 화 전략은 트로트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켰습니다.”

 

- 전유진, 정서주 10대 소녀의 인생 노래 ‘큰 울림’

음악 스타일이 변하자 가사도 새롭게 진화했다. 남녀 간의 뻔한 사랑과 이별, 혹은 술타령이 주를 이루던 가사는 2025년 들어 ‘삶’을 노래하며 ‘가족애’’와 ‘인생론’으로 한층 깊이를 더했다.

전유진 ‘어린 잠’ & 정서주 ‘손편지 한 장’ 등 눈물샘을 자극하는 효심(孝心)을 담은 10대 소녀 가수들이 부르는 인생의 노래는 역설적으로 더 큰 울림을 준다.

전유진의 신곡 ‘어린 잠’은 나이 들어가는 부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안타까운 시선을 담았다. 전유진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엄마”를 부를 때, 중장년층 팬들은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거나 혹은 사랑하는 자식을 생각하며 눈물을 왈칵 쏟는다.


사진=전유진 '어린 잠' MV 정서주의 새 노래 ‘손편지 한 장’도 디지털 시대에 아련한 아날로그 감성을 건드린다. 꾹꾹 눌러 쓴 편지처럼 진심을 담은 가사는 “잘살고 있냐”는 안부 인사 하나로 부모세대의 팬덤들과 대중의 지친 마음을 무너뜨린다.

“유진 양 노래 듣다가 돌아가신 엄마 생각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어린 가수가 인생을 어찌 알고 이리 슬프게 부르나요. 내 마음을 후벼 파네요.” 유튜브에 남겨지니 팬덤 반응 역시 감동이 주를 이룬다.


임영웅의 ‘IM HERO 2’ 앨범 수록곡 ‘들꽃이 될게요’는 팬과 대중을 향한 헌사다. 화려한 장미가 되어 주목받기보다 이름 없는 들꽃이 되어 당신의 곁을 지키겠다는 메시지는 팬들에게 ‘구원’과도 같은 위로를 준다. 

이는 가수가 대중 위에서 군림하는 스타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 지금 ‘비트’보다 ‘위로’에 열광하는가?

 

2025년, 왜 대중은 신나는 비트보다 슬픈 발라드 트로트에 열광할까? 

많은 전문가는 이를 ‘시대적 불안(Anxiety)’과 ‘고령화’에서 찾는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국내외적으로 경제적 불확실성과 사회적 고립감이 심화 된 2025년, 대중은 잠시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흥)’보다 내 아픔을 알아주는 ‘치료제(위로)’를 원한다. 

한 심리학 교수는 “사람들은 이제 ‘힘내,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긍정보다 ‘많이 힘들었지? 나도 그래’라는 공감의 정서에 더 반응한다. 

최근 트로트의 슬픈 가사가 역설적으로 가장 큰 힐링이 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막연한 ‘흥’으로는 덮을 수 없는 현실의 피로에 대중들은 실질적인 위로가 더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트로트의 주 소비층인 5070세대는 은퇴, 자녀의 독립, 신체적 노화 등으로 인한 인생의 상실감을 겪는 시기다. 이때 “세월이 야속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주는 트로트 가수의 노래는 자식들도 채워주지 못하는 정서적 빈자리를 메워준다. 

그들에게 트로트 가수는 연예인을 넘어선 중장년층들의 정서적 결핍을 해소해 주는 ‘심리 상담사’ 역할을 대신해 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잘 부르는 가수" 보다 "잘 전달하는 가수" 시대


사진=임영웅 - [IM HERO] 플레이리스트

 2025년의 ‘트로트 씬(Scene)’의 변화는 명확하다. 

고음을 얼마나 높게 지르느냐, 기교를 얼마나 화려하게 부리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가?”, “얼마나 나의 심금을 울리는가?”가 더 필요한 지점이다.

 

임영웅, 송가인, 박서진, 박지현, 손태진, 전유진 등 현재 차트를 지배하는 가수들의 공통점은 탁월한 ‘전달력(Delivery)’이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로 이야기를 건넨다.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힐링 콘텐츠’로서의 진화. 이것이 ‘흥’의 시대를 보내고 ‘위로의 시대’를 연 2025년 트로트의 현주소다.

 

오늘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곡이 있는가? 

만약 트로트 가수의 발라드를 들으며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2025년의 새로운 트로트 트랜드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트롯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박강민

박강민

기자

여기에 광고하세요!!

트롯뉴스
등록번호서울 아56004
등록일자0025-06-20
발행인박강민 이진호
편집인박강민
연락처02)552-9125
이메일trotnewspool@gmail.com
주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64길 13, 6층 610a
트롯뉴스

트롯뉴스 © 트롯뉴스 All rights reserved.

트롯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